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왕현종 연세대 미래캠퍼스 역사문화학과 교수
지난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선정을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기념일을 공모하고, 공청회와 기념일 선정위원회의 심의과정을 거쳐 최종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학술계의 견해보다는 역사성, 상징성, 지역참여도를 내세웠다. 기념일은 정읍이 제창한 ‘황토현전승일’로 양력 5월 11일(음력 4월 7일)이다. 근거는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군과 격돌해 최초로 대승한 날이다. 이 날을 계기로 농민군의 혁명 열기가 크게 고양돼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황토현전승일"은 계급사회를 타파하는 우리 역사의 최대 민주혁명이자 그 혁명을 주도한 주체들이 바로 ‘전북인들’이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과연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지난 1994년 동학농민전쟁 백주년 사업을 위해 전국 각지 기념사업회의 왕성한 활동에 이어, 2004년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한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꾸려졌다. 현지조사를 통해 새로운 참여자와 후손의 고난한 삶을 밝혔다. 이후 전국적으로 민중혁명의 중요성이 제고되면서 마침내 작년 4월 서울에 전봉준 장군의 동상 건립이 이뤄졌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은 양반 지배층의 억압과 수탈에서 해방된 민중, 외세 침략을 막고 민족의 생존권을 주장하려다 좌절한 민중해방운동의 참 의미를 되새기려는 것이다. 올해 국가기념일 행사는 서울과 정읍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으로 치러졌다. 광화문에서 개최된 기념식은 모처럼 중앙무대에서 농민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과 미해명의 과제가 아직도 어둠속에 묻혀있다. 동학농민혁명의 계기적 발전과정에 대한 해명은 말할 것도 없으며, 민중의 잔혹한 사살에 대한 진상규명이나 가해자인 일본인 및 양반 민보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경각심을 환기할 문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복원이나 기억 찾기 운동이 과거 추적에만 머무르게 된다면, 진정한 기념일 제정 의미가 약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앞으로 농민혁명을 기념하고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십오 년쯤 전, 고 표영삼 선생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1864년 봄 동학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일화다. 많은 동학도들이 흩어지면서 최시형 선생께 다그쳐 물었다고 한다.“언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느냐”고, “개벽의 날을 언제 오느냐”고. 그때 해월 선생은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했다.“하늘에서 검은 비단이 내려올 때 그것이 개벽의 조짐이라 생각해라!”고.
과연 개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실마리는 교조 최제우의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하원갑 지내거든 상원갑(上元甲) 호시절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라고 읊조렸다. 그날은 첫 갑자년인 1864년으로 비정되었으나 민중이 주인 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만 판치는 패권 세상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80년 후 다시 갑자년을 고대해 본다. 2044년이다. 만일 그때까지도 지금의 분단과 사회적 갈등, 민중의 소외와 불우한 생을 방치한 채, 해방과 분단 100주년인 2045년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떨까. 민중 해방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던 동학농민군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또 외세 침략에 저항하며 투쟁했던 동학의 후예들인 독립투사들에게도 역시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좁은 지역주의나 특정 계파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족의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선린을 위해 기억 유산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미래의 민중사회건설을 위해 저항·자유·해방을 위한 투쟁 대열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신새벽 개벽이 찾아올 날은 불과 25년밖에 남지 않았다.

저자소개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료 수집·편찬 및 기념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역사비평사, 2003), 『한국 근대 토지제도의 형성과 양안』(혜안, 2016), 『대한제국의 토지조사와 토지법제』(혜안, 2017)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