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대회 공동개최의 의미
청암대학교 연구교수 성주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공동개최 협약 체결
금년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는 갑오년이다. 100주년이었던 1994년에는 방송과 언론 등에서 취재열기로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120주년을 맞는 올해는 오히려 조용하다. 다만 관련단체만 이러저러한 기념행사를 이미 개최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초기에 조용하던 분위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각종 기념행사가 활성화되고 있고 저변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대회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 천도교, 동학농민혁명유족회(이하 유족회) 등 주요단체가 중심이 되어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5일 오전 11시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천도교 중앙총부와 기념재단, 그리고 유족회 등 3개 단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하여 금년도 기념식을 함께할 것을 합의하고 MOU를 체결하였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식이 전국에서 각기 지역에 맞는 날을 택하여 산발적으로 열렸으나 금년 120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의 날을 정하고 함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양해각서에는 금년도 기념식을 10월 11일, 장소는 서울 시청에서 하기로 합의했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현 시점, 그동안 조용하였던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대회가 천도교와 기념재단, 유족회, 그리고 관련단체들이 참여하는 화합의 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기념대회는 100주년 때만 해도 생각해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각기 다른 동학농민혁명 기념식
동학농민혁명의 최초 기념행사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4월 7일 천도교청년당에 의해 거행된 바 있었다. 당시의 기념식이 어떤 형식으로 거행되었는지는 확인되지는 않지만 일제의 억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기념식이 거행된 4월 7일은 동학농민군 최대의 승전이었던 황토현 전투가 벌어진 날이다. 해방 후 최초의 동학농민혁명 기념식도 천도교청우당 주최로 1947년 2월 9일에 열렸다. 그리고 북한지역에서는 천도교에서 1월 1일 기념식을 가진 바 있다. 이후에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천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도교단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을 일정한 날보다 그때그때 임시적으로 기념해왔다. 이에 천도교단은 4.19혁명을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일을 정하기로 하고, 조선일보의 주최로 사계 대표자들의 좌담회를 거쳐 3월 21일을 동학농민혁명일로 확정한 후 매년 이날 기념식을 거행해왔다. 그리고 정읍시에서는 1968년 4월 26일 백산대회를 기념하여 갑오동학농민혁명기념문화제를 개최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밖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기념식을 개최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에는 천도교는 천도교대로, 동학농민혁명 관련단체는 단체대로 각각 기념식을 거행하는 파행을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에 대한 반성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에는 관련 단체마다 기념행사를 하는 바람에 공동기념행사는 고사하고 일부 단체들 간에 불신이 없지 않았다. 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이하 동단협) 측에서는 천도교를 특정종교단체라 배제하였고, 이에 따라 천도교는 천도교대로, 동단협은 동단협대로 각각 기념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학문과 종교적 견해 차이를 줄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에 대한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 하는 점도 없지 않았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 정점에는 명칭에 대한 이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제작하려 하였지만 명칭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천도교에는 ‘동학혁명’, 동단협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명칭을 각각 고집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후 20년이 지난 올해 갑오년에는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마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은 알다시피 삼정 문란으로 대표되는 조선 왕조의 중세적인 체제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수취 체제의 문란으로 수탈의 폐해를 혁파하고 신분 차별을 타파하여 일반민중인의 안정된 삶을 요구하였다. 한편으로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간섭과 침략에 맞서 저지하고자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후반 조선이 처한 체제 모순과 외압의 시대적 조건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의 변혁 운동 가운데 당시의 시대적 역사 과제를 가장 올바르게 인식하였던 변혁 운동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미래화⋅세계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의 슬로건 중의 하나가 ‘전국화·세계화·미래화’이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지역중심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동학농민혁명 두 갑주인 올해 최대의 과제가 기념일을 확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는 독자적으로 기념했던 100주년 때와는 달리 천도교단과 기념재단, 유족회가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에 대한 기념재단과 천도교의 입장은 때로는 첨예하게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당시에는 천도교가 ‘특정종교단체’라 하여 배제되었지만 이번 120주년에는 함께 공동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공동행사는 기념대회뿐만 아니라 학술대회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이념을 제공한 동학은 화합과 소통을 지향하였다.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누구나 평등하다는 동학의 이념은 120주년을 맞는 바로 오늘 동학농민혁명의 최대의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금년 동학농민혁명의 슬로건은 ‘사람, 다시 하늘이 되다’이다. 이 슬로건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 공동개최다. 이는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에서 가장 진일보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산발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념행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해 개최하는 공동기념대회는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세계화⋅미래화를 지향하는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대회 공동개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