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대학살기념관에서 동학농민군의 희생과 평화를 다시 생각하다.
정근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동학농민혁명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얼마나 되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아픔을 어떻게 달랬을까? 이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그러나 아직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근현대사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패퇴한 이후, 이들과 이들의 가족은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농민혁명 10주년에 시작된 러일전쟁과 이후 40년간 지속된 일제의 통치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없는 구조적 폭력이었다. 해방은 사건 후 50년이 지났을 때 찾아왔지만, 이들에게 귀 기울일만한 여유를 제공하기에는 현실의 소용돌이가 너무 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해방을 맞이했을 때 대략 70세의 노인들은 자신들의 청년시기에 경험했던 열망과 좌절, 고통의 경험을 생생히 말할 수 있었을 테지만, 누구도 이들에게 진지하게 이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또 6.25전쟁이 터졌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농민군이나 이 사건에 직접 개입했던 참여자들의 기억은 대부분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사라졌다.
동학농민혁명은 단지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저항에 그치지 않고 일본군에 맞선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이 사건은 전라도 일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저항운동이었고 일본과 중국간의 ‘갑오전쟁’을 이끌어왔다. 전장은 전라도와 경기도 일대로부터 평양과 압록강을 넘어 대련의 요동반도와 위해의 산동반도로 확산되었다. 전쟁은 치열한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토벌에 가까웠다. 일본군은 전라도 남단에서처럼, 다렌과 뤼순에서 청나라 병사들과 주민들을 무참하게 살육하였다. 조선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일본군이 물러난 뒤 청의 관리들과 주민들이 희생자들을 수습하였는데, 그 규모가 3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날 뤼순에 남아 있는 만충묘는 이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전쟁에서 가장 참혹했던 사건은 1937년 12월에 발생한 남경대학살일것이다. 이 사건의 희생자는 1945년 8월의 히로시마 원폭에 의한 희생자보다 더 큰 3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극동국제재판 판결에 따르면, 학살된 주민은 최소 12만명, 최대 약 35만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이 사건 또한 상당기간 그 진상이 밝혀져 있지 않았다. 남경은 일본에 점령되어 있다가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982년 여름, 일본에서 교과서 파동이 일어났다. 일본의 역사 서술에서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을 진입 또는 진출로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독립기념관 설립을 모색하였듯이, 중국에서는 남경학살기념관과 항일기념관을 설립하는 움직임이 형성되었다.
중국에는 항일전쟁과 관련하여 3대 기념관이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의 출발로서의 ‘7.7사변’이 발생한 북경의 중국인민 항일전쟁기념관, 1937년 12월에 발생한 남경학살을 다루고 있는 남경대학살기념관,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을 다루고 있는 심양의 9.18 역사박물관이다. 항일전쟁기념관은 1987년 항일전쟁 50주년을 기념하여 준공되었고, 9.18 역사박물관은 1999년 9월 18일에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남경학살기념관은 1985년 8월, 그러니까 중국에서 말하는 ‘항일전쟁과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40주년’에 개관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로부터 10년 후에 기념관이 확장되고 새롭게 발굴된 ‘학살현장’에 기초하여 전시가 바뀌었다. 특히 사건의 야만성과 희생자 규모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구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점이 되었다. 왜 그렇게 일본군이 남경에서 잔혹한 일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군은 속전속결로 중국 국민당군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였지만, 상해와 주변지역에서의 중국군의 저항은 상당했다. 당시 중국 국민당정부의 수도였던 남경의 점령은 군사전략적 차원보다는 상징정치적 차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장개석은 일본군의 상해점령 후 곧바로 수도를 중경으로 옮겨 피신했지만, 당성지(唐生智)는 남경을 지킬 것을 주장하고 남경보위전을 지휘하였다. 일본군에 함락된 남경에서 6주간 진행된 살육과 강간은 지옥의 풍경보다 더했다.
남경학살의 진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재미 중국계 학자였던 아이리스 장이었다. 그녀는 발굴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찾고, 생존자들을 인터뷰하여 『남경의 강간 : 세계 제2차 대전의 잊혀진 홀로코스트』라는 책을 1997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으로 출판되었다. 아이리스 장은 남경학살 당시에 자행되었던 야만적 살인과 여성들에 대한 만행을 고발했을 뿐 아니라 독일 지멘스사에 근무했던 라베(John Rabe)와 여러 외국인 선교사 및 기업인들이 국제안전지대를 만들어 난민들을 대피시키고 죽음을 구했던 적십자사 활동도 발굴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극우 세력들로부터 수 차례 협박을 당했을 뿐 아니라 생존자들과의 인터뷰과정에서 전이된 트라우마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결국 유감스럽게도 2004년 11월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경대학살 기념관은 2차 확장 후 다시 10년이 조금 더 지난 2007년, 즉 남경학살 70주년에 다시 확장 신축하였다. 이때 당시 중국인들의 참상을 표현한 각종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었으며 평화의 여신상도 세워졌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가 지속되면서 중국정부는 2014년 2월, 9월 3일을 중국인민항일전쟁승리 기념일로, 12월 13일을 남경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로 결정했다. 2015년 10월, 난징 대학살 관련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념관측의 자료에 따르면, 근래에 매년 800만 명이 이 전시를 관람한다.
히로시마는 피폭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적인 평화도시로 거듭났다. 남경은 어떠한가? 최근의 남경학살 연구는 거시사적 연구와 미시사적 연구로 나뉘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남경은 12월 13일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국제평화도시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내부에서 명 왕조나 국민당정부의 수도였다는 점을 의식하여 역사문화도시로 도시정체성을 구축하려는 흐름도 강하지만, 남경대학살의 고통에 기반하여 평화정체성을 추구하는 흐름도 상당하다.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한중일의 근현대사와 고통의 기억은 공유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사회적으로 인정할만한 평화도시가 없다. 중국에서는 1931년부터 14년간의 항일운동 기간에 약 2천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1500만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운데 희생된 조선인의 수는 잘 알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남경학살에 대한 관심은 인권 담론이 상대적으로 발전된 광주와 제주를 중심으로 증대되었다. 5.18기념재단은 2010년 8월 난징대학살기념관과 교류협정을 맺고, 2016년에는 남경학살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아우르는 1894년 동북아시아 전쟁은 어떤가? 동학혁명기념재단도 국내적 시야에 머 무르지 말고, 좀더 적극적으로 1894년 당시의 일본의 전략과 중국의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이후의 동아시아의 전쟁 경험들을 평화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전주나 정읍으로부터 대련과 위해를 잇는 기억의 연대 네트웍을 구축할만하다. 거대한 폭력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평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정근식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문학박사)한 후 전남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한국사회사학회 회장, 미국 시카고대학교 방문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부원장, 서울대학교 평의원회 의장,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방문교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주요 저서로는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2018),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2016), 『포위된 평화, 굴절된 전쟁의 기억』(2015), 『한국 현대사와 민주주의』(2015), 『기억과 표상으로 보는 동아시아의 20세기』(2013), 『한국과 중국의 사회변동 비교연구』(2013), 『한국의 노숙인』(2012), 『지역 민주주의와 축제의 관계』(2012), 『근현대 형성과정의 재인식2』(2012), 『식민권력과 근대지식』(2011), 『항쟁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2006), 『지역전통과 정체성의 문화정치』(2004)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