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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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35호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를 찾아서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를 찾아서


일시: 2019. 1. 23.(수) 13:00~16:00

장소: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사무실

대담: 박남식 이사장, 윤여관 이사, 이원하 대외협력국장



 

문) 반갑습니다. 오는 4월 1일자로 발행될 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통권 35호) 지역대담을 동학농민전쟁공주우금티기념사업회와 갖게 되었는데,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윤여관 이사님, 이원하 대외협력국장님이 함께 해주셔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 뜻깊은 내용으로 채워질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분들을 위해 인사말을 겸하여 근황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남식) 안녕하십니까.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남식입니다. 전국 각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관련단체 임원님들과 회원 여러분께 안부를 여쭙습니다.



문) 이사장님, 좀 길게 얘기하셔도 괜찮습니다.(웃음) 이사장님은 공주지역에서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외에도 맡고 계시는 일이 많지요? 이사장님께서 맡고 계시는 일 등에 대해서도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박남식) 예, 이전에 전국농민회 공주지부인 공주농민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도 공주농민회 산하 농협협동조합개혁위원장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공주농민회 일과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일을 맡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주민주단체협의회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문) 윤여관 이사님, 그리고 이원하 대외협력국장님도 인사를 겸하여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윤여관) 예, 반갑습니다. 우금티기념사업회 창립시기부터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금껏 활동해오고 있는 윤여관입니다. 전국의 기념사업단체 관계자 여러분과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시는 많은 분들게 이 자리를 빌어 인사드립니다.


이원하) 반갑습니다. 이원하입니다. 저도 우금티기념사업회 단체 창립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에 몸담아 나름대로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지금은 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대외협력국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는데 함께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작년부터 ‘공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라는 단체의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영일, 지수걸, 조재훈 교수님 그리고 정선원, 윤여관 등등 여러 선생님들과 처음 만났던 게 1993년이니까 벌써 26년이나 되었네요. 1994년 6월 공주지역 시민사회단체 연합체 형태로 창립된 ‘갑오농민전쟁공주우금티기념사업회’창립을 얘기하려면 그 이전인 1993년 이른 봄에 결성되어 활동했던 ‘우금티전적지성역화추진위원회’(위원장 진영일, 약칭 ‘우전추’)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무렵의 일들을 떠올려서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남식) 그렇습니다. 문부장님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1993년 1월에 일간신문에 우금티 전적지 부근에 주유소를 건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실렸어요. 그 기사를 접한 직후 동학농민군의 최대 격전지였던 우금티 전적지에 주유소를 건립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대여론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교조 충남지부, 전국농민회 공주지부 등 공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우금티 전적지 주유소 건립을 반대하는 ‘공주사랑시민모임’을 구성하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민단체 관계자는 물론이고 대학교수, 각급 학교 교사, 일반시민 등 151명에게 서명을 받아서 관계기관을 방문하여 공문과 함께 반대서명 연명서 전달을 통해 ‘우금티 전적지 부근 주유소 건립계획 철회’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우전추’로 이어진 것입니다.



문) 그런 노력으로 결국 ‘주유소 건립계획’은 철회되었지요? 철회를 시킨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흐름을 이어서 이듬해인 1994년 동학농민군 최대 전적지였던 우금티 고개 부근에 세워진 ‘동학혁명군위령탑’(1973.11.11.) 일대를 국가사적으로 등록시키는 성과를 이루었지요?


윤여관) 네, 맞아요. 주유소 건립계획이 결과적으로 우금티 전적 국가사적 등재를 추동한 셈이지요.(웃음) 공주사랑시민모임, 우전추(우금티전적지성역화추진위원회), 우금티동학농민전쟁100주년추모사업회(現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창립 등이 하나의 맥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에 주유소 건립 반대를 주도했던 공주사랑시민모임의 중심은 전교조와 농민회 등 공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었어요. 이런 움직임 속에서 진영일 교수님과 조재훈 교수님 그리고 고인이 되신 구상회 선생님 등 여러 어른들께서 모여 우전추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우천추가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서 동학농민전쟁100주년기념사업회 창립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문) 우금티기념사업회가 창립된 1994년 6월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고조되어 있었어요. 문민정부 출범으로 사회적인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소위 진보적인 단체로는 처음으로 전주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서울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1993년 7월 30일 한날한시에 법인설립 승인을 받았지요. 그래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경비를 전주사업회와 한국민예총에서 88백만원, 120백만원을 국비로 지원받아 전국적인 기념사업을 펼칠 수 있었지요. 그해에 국비 2억여 원을 지원받아서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 주최로 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전북 정읍 일대에서 고부봉기 역사맞이 굿을 펼쳤고, 4월 29일과 30일에는 전주시청 광장을 비롯한 전주시 일원에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대회 등을 성대하게 열었지요. 그리고 100주년 기념사업의 대미(大尾)로 10월 29일과 30일 우금티전적지 바로 아래 위치한 공주교육대 대운동장에서 추모제례를 거행했었지요.


윤여관) 맞아요. 그때 문부장님이 전주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을 겸했지요? 그 해에 갑사유스호스텔 등에서 전국에서 단체들이 모여들어 회의를 자주 했었지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공주지역에서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행사를 치루기 위해서 많은 단체들이 연합체 형식으로 함께했어요.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100주년 행사를 마무리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되어 ‘갑오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를 정식으로 창립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2000년대로 넘어선 후 사단법인 설립 승인권이 중앙부처에서 광역자치단체로 이양되었고, 이때 우리 우금티기념사업회 충청남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 얘기를 조금 진전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공주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남식) 이인면사무소 앞에 갑오년 당시 충청감사였던 박제순 비가 세워져 있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주민들이 이 비를 없애야 한다고 했었나봐요. 그때 박제순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했으니까 비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것도 역사니까 없애지 말고 보존하자는 사람들이 있어서 의견대립이 있었어요. 어쨌거나 그 비를 없애지 않고 현재도 이인면사무소 앞에 있거든요. 우금티에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에 세워진 동학혁명군위령탑에 대해서도 한때 철거하자, 그냥 놔두자 이렇게 의견이 대립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문) 어쨌거나 동학혁명군위령탑은 이런저런 논란은 있었지만 1994년 100주년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힘입어 그 해에 국가사적으로 지정이 되었지요? 위령탑 바로 뒤편 흙으로 만든 봉화대, 탑을 마주보고 선 자리에서 오른손 편에 돌무더기 등이 100주년 기념사업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윤여관 이사님이 직접 제작을 진두지휘하셨지요?(웃음) 그때 얘기를 좀 해주시지요.


윤여관) 맞아요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충남민예총 공주지회에서 논의를 거쳐 흙으로 봉화대를 만들고 돌탑(돌무더기)을 만들고 목비(木碑) 그러니까 나무에 시를 새겨서 나무 비를 세웠어요. 그때 1백만 원인가? 예산을 지원받아서 ‘100주년 기념 조형물’로 만든 것입니다. 제가 한 달 동안 연가를 내고 학교를 안 나가면서 만들었어요. 봉화대는 자원봉사 학생 몇 명을 데리고 그냥 저 혼자 만들었어요. 봉화대에 듬성듬성 끼워넣은 돌로 만든 너와는 심우성 선생님이 주셨어요. 흙담은 노무현 전대통령 사저를 지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이 흙 건축물에 대한 고증을 해주셨어요. 정기용 선생님이 당시 충남지사님하고 친구사이였는데 마침 그 시기에 정기용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귀국을 했어요. 그분이 충남도에 얘기해서 흙으로 봉화대를 만드는 작업비가 조금 지원되었던 거예요. 봉화대를 만들 때 처음에는 정기용 그 분이 보내준 담틀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데, 근데 그걸로 해보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어요. 봉화대 전체를 씌울 수 있는 거푸집을 세우고서 그 위에 올라가서 두드리면서 흙을 쌓아올리고 두드리기를 거듭했어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아무래도 행사 때까지 완성을 못하게 생겨서 나중에는 돌담을 기계를 동원하여 마무리했어요.



문) 답사 안내를 하느라고 이곳에 오면 100주년 이후 몇 년 동안까지는 위령탑 앞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바른 쪽에 시를 새겨넣은 나무비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추었어요.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긴 건가요?


윤여관)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썩어서 없어진 것입니다. 그 묵비(木碑), 나무로 만든 시비(詩碑)는 수입산 소나무에다가 공주민예총의 문학분과 회원 등이 공동창작단을 만들어 쓴 시를 새겨넣었었지요. 나무 비에 글자를 한 자 한 자 전부 조각으로 새겨넣었어요. 몇 날 며칠을 밤새서 글자를 새겼어요. 글자를 새긴 후 목비에 칠을 해서 세워놨으면 좋았으련만 그걸 안했더니 몇 년 있다가 그게 썩어서 넘어졌어요.



문) 네, 그랬었군요. 제가 100주년 이후로도 거의 매년 몇 차례씩은 답사안내를 하느라고 위령탑을 찾았는데, 어느 해인가는 봉화대도 다 무너져갔었는데... 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가끔씩 보수를 합니까?


윤여관) 처음에는 흙만 가지고 했던 거라 비오니까 무너져서 98년도에 봉화대 내부에 벽돌을 놓고 밖에서 다시 흙을 붙이고, 봉화대 중간 중간에 돌 너와를 끼워서 보수를 했어요. 4년 만에, 그러니까 1998년도에 다시 만든 거죠.


이원하) 작년에 새로 했는데, 완전히 황토시멘트로 싹 새로 보수했어요.


박남식) 시멘트하고 황토하고 섞은 거죠.


윤여관) 지금 다시 그걸 복원을 해놨는데, 그건 복원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쓰러져가는 모습 그대로 놔두는 것이 의미가 있어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낡아가는 없어져가는 자연의 모습 그대로의 시설물이 의미가 더 있는데... 쓸데없이 돈을 쓴다니까요 공주시에서 담도 새로 해놨어요. 도대체 왜 다시 했는지 몰라요. 한 번 세워놓으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무너져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게 그 나름대로 훨씬 의미가 있는데...



문) 네, 윤여관 이사님 지금 말씀하신 얘기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대목인 것 같아요. 별도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일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2006년 전후에 제가 (재)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무처장으로 경복궁 안에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때 재단 이사회에서 특별법에 명시된 동학농민군 추모시설은 역사성 등에 비춰볼 때 우금티전적지 일대에 건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논의되었습니다. 그래서 충남도는 물론이고 공주시와 우금티기념사업회 임원님들과 회의를 몇 차례 가졌었는데, 그때 “근대의 기념시설물이 죄다 콘크리트 등으로 세워져서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지양해야한다” 이런 논리로 결국은 공주에 추모시설 건립을 막아버린 적이 있어요. 기억하시죠? 윤여관 이사님이 그러한 논리의 핵심에 서 있는 분인데... 사실 윤이사님처럼 생각하시는 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니까 콘크리트 뭐 이런 걸로 무슨 기념시설물을 건립하려면 차라리 하지 말라... 이렇게 되는데 이점은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말입니다, 제가 거의 매년 서너 번씩은 답사를 오는데, 예전에 다 쓰러져가는 봉화대를 보면서 답사에 참여한 분들 중 열이면 여덟 아홉이 허물어져 가는 봉화대를 왜 보수도 하지 않고 저렇게 방치해두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거든요.(웃음) 윤이사님의 생각대로라면 자칫 기념사업을 왜 하느냐? 이렇게 귀결될 수 있거든요. 윤이사님의 그런 생각이 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혹여 생각해보신 적이 없으신지요?


윤여관) 유홍준, 김정헌, 정기용 그런 분들 미술이나 건축을 전공한 분들은 대체로 전 세계 근대가 훑고 지나간 흔적들, 예를 들면 피라미드, 에펠탑, 각종 신전(神殿)들 등 몇 천 년이 지나도 그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자연풍파에 온전히 견뎌내는 이런 것들이 농업사회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자리하니까 그런 것들 말고, 문화라는 게 어쨌든 토착성도 중요하고 풍토성, 지역성이 중요하잖아요? 세계화로 인하여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마구 수용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식민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어요. 그래서 지역의 토착적인 정서에 부합하면서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하는 원칙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입니다. 자연은 우리 대에만, 특정 시대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잖아요?



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몸담은 동료로서 제가 윤이사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당대 현실에서 요구되는 일에 나름대로 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공주우금티기념사업회 운영방향에 예술가 윤여관의 생각을 지나치게 강하게 내세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생각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 당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역사적 의무도 있는 거잖아요? 당대의 모든 사람의 의식이 어느 날 한시에 완벽하게 전화되는 그런 일은 없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여러 생각이 공존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당대에 선구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시더라도, 그 분의 생각이 정말 온당하게 선구적인 생각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공감이 이루어진 후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형성되어 가야지 그렇지 않다면 한 개인의 생각을 일반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가가 추구하는 이상세계와 현실과의 충돌은 사실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당대에 부합한 기념시설물 설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근대라는 게 많은 문제점을 노정했다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요. 중요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근대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근대극복 방안은 어려우니까 근대를 극복하는 것에도 보다 긴 전망을 내다보고 전개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원하) 우리 윤이사님과 문부장님 사이에 접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부장님이 제기한 문제점을 사실은 우리 공주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오래전부터 윤이사님에게 얘기해왔고,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당대에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생각으로는 기념사업을 추진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우리 공주에서 기념사업 하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 공주사업회에서 문부장님을 오시라고 해서 임원님들과 대화를 나눌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임원님들도 문부장님과 대체로 생각이 같거든요.(웃음)


박남식) 공주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언제까지 우금티전적지를 저렇게 방치할 거냐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이 상당히 오래전부터였습니다. 공주시에서 우금티전적지 환경정비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공주시장님도 중장기적으로 우금티전적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작년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지원조례도 제정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념사업을 선참에 나서서 추진해야할 기념사업회가 환경정비사업 자체를 보이콧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부장님의 생각에 저도 공감합니다.



문) 요즘은 잘 사용되지 않는 말입니다만, 4반세기라는 말을 예전에는 많이 썼습니다. 100년이 한 세기니까 4반세기 25년이잖아요? 오늘 자리를 함께해주신 분들이 모두 25년 가깝거나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념사업 추진에 헌신해온 분들이라 본질적인 측면에서 많은 얘기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대담에 응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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