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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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35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문장준의 증손자 문형식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문장준의 증손자 문형식


일시 : 2019. 2. 27.

장소 : 관작리전적지(충남 예산군)



 

문) 이번 호의 유족 인터뷰는 참여자 문장준의 증손자 문형식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를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안녕하세요. 문 장자 준자 증손자 문형식입니다. 제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동학 100주년 기념행사 때부터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는데, 현재 사단법인 동학농민유족회 이사직과 함께 충남예산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문)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자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반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을 1894년 겨울 공주 우금티에서 일본군의 근대적인 신무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정신은 항일의병으로 이어졌고, 일제강점기 3·1운동과 항일독립투쟁 그리고 해방이후에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최근 광화문 촛불시민혁명으로 계승되었다고 얘기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으로서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답) 네, 감회가 남다르지요. 남다르긴 한데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엊그저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단체에서 등기로 초청장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꼭 참여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문) 증조부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처음 누구에게 들으셨나요?


답) 15살 무렵에 할아버지께 들었어요. 내가 1937년생이니까 아마 그 때가 1950년대 초 전쟁통이었어요. 증조부께서 관작리전투, 홍주성전투 등에 참전했다가 붙잡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정착을 위해 고전했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께 들었어요.



 

문) 증조부께서 1984년 2월에 내포지역의 동학(東學)의 지도자 박희인의 권유로 입도했다는 기록이 확인됩니다. 이를 근거로 2004년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하여 증조부님을 참여자로 등록하시고, 선생님도 유족등록을 마치셨지요? 증조부님에 대해 조부님께 들은 얘기를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증조부님에 대한 얘기는 주로 할아버지께서 많이 해주셨어요. 근데 워낙에 오래되어서 다 잊어버렸어요.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증조부께서 신례원 관작리전투에 참전하여 승리한 다음에 홍주성전투에서 패배한 뒤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해미읍성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일 처형을 하려고 하는데 다행스럽게 아는 사람이 있어서 처형 전날 증조부님을 몰래 빼내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그곳에서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서산군 원봉면 방갈리, 지금은 태안군으로 갈라졌는데 그때는 예산이나 태안이나 서산군에 속해있었다고 합니다. 하여튼 방갈리로 가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숨어들어가 정착하려했는데 여의치 못해 이북(북한)까지 올려갔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곳에서도 정착하기가 마땅치 않으니까 다시 내려와서 동학하던 30명이 천안군 광덕리 산골로 숨어들어 그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산골이 삼중으로, 말하자면 ‘첩첩산중’인 거기서 7년 6개월을 숨어서 지냈다고 해요. 거기에서 거주하던 때 증조부께서 할머니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것 같아요. 할머니 고향이 광덕리이거든요. 그 할머님이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뗄 정도로 영특하신 분이셨대요. 그 덕분에 저도 한문을 할머니에게 배웠어요. 동학농민혁명 이후 어려운 집안을 그 할머니께서 끌고 오셨어요. 고모들 네 분에다가 작은아버지 한 분, 우리 아버지 이렇게 육남매를 두셨는데 큰고모는 문보물이라고 삽교천에 계셨고, 둘째 고모 손이 지금 예산동학농민혁명유족회 총무를 맡고 있지요. 셋째 고모는 서울에 살고, 넷째 고모는 돌아가셨지요.



 

문) 증조부께서 해미읍성 감옥에 갇혔다가 처형되기 전날 말 그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와 정착을 위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시다가 북한까지 갔다가 다시 천안 다시 되돌아와 천안군 광덕리에 정착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증조부님은 언제 돌아가셨는지,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 이런 사항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증조부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아무튼 방갈리에서 배를 타고 정착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후 이북까지 갔다가 다시 천안 광덕리로 돌아와 정착을 했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대요.



 

문) 증조부님 함자로 된 사료가 발견되어 역사학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료가 『문장준역사』(文章峻歷史)이지요? 1894년부터 1923년까지 증조부께서 직접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는데, 발견경위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조부님과 제 아버지께서 뭘 종이 싸가지고 옛날 초가집 지붕 밑이나 고방 구석진 곳 이런 곳에 숨겨놓고 그러셨어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궤짝이 하나 있었어요. 증조할아버지 관련 유품이 담긴 상자인데 그것을 할아버지가 보관하셨어요. 저는 그 상자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다락에 작은 궤짝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박성묵 씨가 궤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찾아왔어요. 그래서 궤짝에 있는 책자를 보여주니까 그 것을 사진 찍어서 가지고 갔어요. 그 뒤에 충북대학교 신영우 교수가 찾아와서 그 책자를 보여주었지요. 그 뒤에 천안에 독립기념관을 개관할 때도 신영우 교수랑 몇 사람이 와서 독립기념관에 전시를 한 후 반납하겠다고 증서를 써주고 가져갔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독립기념관에서 행사가 끝나고 반환을 했는데 반납 과정에서 그 책자가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당시 예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을 했던 이용호 씨라고 내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돌려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나에게 반납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서야 가져오라고 해서 받았지요. 이런 사정으로 그 책자를 내가 다시 돌려받는데 몇 년 걸렸어요. 몇 년이 지난 후 KBS에서 촬영한다고 큰 집 영식(문영식 태안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이가 가지고 가서 촬영을 하고 그랬어요. 그 후로 내가 잘 보관하고 있는데 언젠가 충청남도 역사연구소에 찾아와서 자기들이 위탁보관 관리를 해주겠다고 가져갔어요. 그래서 그 책자는 현재 충남역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지요.



문) 내포지역의 참여자 문장로, 문장준, 문구석 이렇게 같은 성씨를 가진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 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지요? 문장로, 문장준 이 두분은 형제간이고, 문장로의 아들이 문구석이라고 알고 있는데.... 지난 해 작고하신 문흥식 선생님, 태안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이신 문영식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 이렇게 그분들 후손이신데....


답)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문장로, 문장준, 문구석 이분들이 아마 사촌 정도 되지 않나 싶어요.



문) 그럼 누가 제일 형입니까?


답)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안이 당시에 여기 내포지역에서 상당히 기반이 튼튼했던 거 같아요. 재산이나 학식을 갖추고 인품도 인정받는 그런 집안이었다고 그래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문장준 우리 증조부님의 형님이 태안의 참여자 문영식의 증조부이신 문장로 어른이예요. 문장로 그

분의 손자가 문원덕이라는 분인데 문영식의 아버지예요. 그분이 1970년대 후반 태안 백화산자락에 동학혁명군추모탑을 사재를 털어서 세웠지요. 그때 문원덕 그 어른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 벽돌 한 장 흔하게 구할 수 없을 때 백화산자락에 추모탑을 세웠으니까요. 그 분이 1966년에 내포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분들을 직접 만나 작성한 책자가 『순도자 명단』이라고 알고 있어요.



 

문)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지난 주 화요일이었던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거기다가 26일 바로 어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5월 11일로 공포되어 기념일 제정이 최종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특별법 이후 15년 동안 논의에 논의를 거듭해온 기념일이 제정되어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추진해온 많은 분들이 기쁨을 나누려고 제게 전화를 많이 걸어왔습니다. 참여자 유족이신 선생님께서도 유난스럽게 감회가 깊고 기쁨 또한 클 텐데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답) 정말 기쁩니다. 아주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 제가 죽기 전에 이루어져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죽어서 조상님들을 뵐 때도 그래도 조금은 덜 미안하게 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반란군 후손이라는 멍에를 뒤집어 쓴 채 때로는 놀림을 받고 때로는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살아온 우리 유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념일 제정을 위해 실무를 맡아 애쓰셨을 우리 기념재단이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기념일 제정에서 멈추지 말고 이제는 일본놈들이 반란사건으로 왜곡하고 전라도사건으로 축소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기점으로 정부에서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갑오년에 우리 조상님들은 입성하지 못했지만 그 후손들인 우리라도 서울로 입성해서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학농민혁명이 신분제를 걷어내고, 왜놈들의 침략을 막아내서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엄청난 의미를 지닌 혁명이었음을 국내외에 천명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말뿐인 명예회복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국권침탈을 저지하게 위해 고귀한 목숨을 기꺼이 내놓고 희생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분들을 하루빨리 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지정하는 일을 추진해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문) 끝으로 빠뜨린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지금 유족도 아닌 사람이 거짓으로 유족행세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지난 해 11월 24일 관작리 행사를 마치고 답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원천에 사는 오00이라는 사람과 시비가 붙었어요. 그날 관작리 행사를 한 후 23명이 버스를 대절해서 답사를 갔는데, 나에게 명색이 회장이라는 사람이 행사마다 참석해야지 왜 어떤 때는 참석하고 어떤 때는 참석하지 않느냐고.... 그런 상황에서 그 차에 함께 탔던 예전에 예산군 노인회장을 맡으셨던 분이 그 사람을 제지했던 일이 있었어요. 오00라는 사람은 사실 유족도 아닌데 유족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얘기들이 들려요. 나중에 내가 그 사람에게 당신이 유족이라는데 어느 쪽 누구의 후손이냐고 물으니까 공주에 사는 유족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공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남식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참여자 유족인 이원하 씨에게 물어보니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얘기인데 재단에서 참여자와 그 유족을 조사하고 등록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등록 이후 관리를 잘하는 방안도 강구해줬으면 합니다.



 

문) 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참여자 조사와 등록, 유족 등록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심의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기념재단이 위탁받아 연구조사부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 재단 연구조사부에 전달해서 참여자 연구조사와 등록 그에 따른 유족을 등록 업무를 추진할 때 재단에서 할 수 있는 범주에서는 재단에서 차질 없이 대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등록된 유족분들에 대한 사후 관리에 대해서는 재단도 재단이지만 유족들의 모임인 (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에서 체계적으로 유족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답) 고맙습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나 더 살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살아있는 동안 힘 닿은 데까지 우리 선조들의 애국애족정신 계승·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재단의 일을 적극 돕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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