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인터뷰
일 시: 2019년 2월 22일(금)
장 소: 국민연금공단 접견실
대 담: 김성주 이사장

이번 호 명사대담에는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전북 전주 출신인 그는 전주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입학한 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두 차례 수형생활을 하기도 했다. 시민행동21, 사회적기업지원을 위한 전북네트워크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후 전라북도의회 의원으로 현실정치에 발을 디뎠다.
<경력> 제8~9대 전라북도의회 의원, 제19대 국회의원 보건복지위 간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전문위원 단장, 現) 제 16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수상> 법률소비자연맹 제19대 국회 종합헌정대상(2016), 제6회 한국전문인대상 정치부문 대상(2015), 제16회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물대상, 우수정치 공로상(2014),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모범언어상(2014), 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상(2013) 등
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후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대담을 수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들께 이사장님 인사와 함께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답) 안녕하세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성주입니다. 2017년 11월 7월 취임 후 막중한 책임감에 밤잠을 설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1년 간 국민 신뢰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냉철한 자기반성과 내부혁신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연금다운 연금’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국민연금만으로도 최소한의 노후생활이 가능하도록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고,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또한, 재정계산에 따른 제도 개선안 마련을 위해 공단 최초로 16개 도시를 순회하며 대국민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인터넷과 전화설문을 통해 제도개선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한편,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기금운용 정보공개 수준 확대, 녹취록 수준의 회의록 작성 의무화 등을 추진했습니다. 2019년 공단은 국민연금 제도개선이 올바른 방향으로 논의되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또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기금의 장기 수익 제고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문) 1년 반 정도 기간에 참 많은 일을 하셨네요. 근래에 방송이나 인터넷, 신문 등을 통해 세계 최상위급은행 전주사무소를 설치한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답) 네, 세계 1~2위 수탁기관인 SSBT은행과 뉴욕멜론은행의 전주사무소 설치는 아주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수탁은행의 지방사무소 설치는 전주가 첫 번째이며, 이는 전주에서도 글로벌 경쟁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지방사무소 설치를 위한 금융당국의 승인절차가 진행 중이며, 5월말 경 개소 예정입니다. 전북혁신도시가 공단의 기금운용을 기반으로 한 자산운용 중심의 금융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외 자산운용기관의 집적화가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국민연금기금과 시너지효과가 있는 금융사의 추가 유치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문) 국민 복지를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는데 어떻습니까? 21세기 초입 현재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현황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복지 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회보험은 가난, 질병, 실업, 재해 등으로 생길 수 있는 미래의 불안에 미리 대처하고자 하는 것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공공부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입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국가·지자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에게 상담, 재활, 직업소개 및 지도, 시설 이용 등을 제공하여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사회보험의 하나인 국민연금은 1988년 국민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탄생한 소득보장제도입니다. 제도 시행 이후 31년이 흐른 지금, 국민연금은 2,231만 명의 가입자와 연금수급자 460만 명 시대를 맞았고, 기금 적립금 또한 639조 원을 돌파하여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공단은 국민연금 가입자 관리, 보험료 부과, 급여지급 등 제도운영과 기금의 관리·운용 및 노후준비와 장애인지원 서비스, 그리고 기초연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복지 서비스기관’입니다. 국민의 행복한 노후를 책임지는 복지의 중추기관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 대담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님을 모신 것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이사장님께서 서울대학교에서 국사를 전공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은 이내 수긍되겠지만... 이사장님께서는 언제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으셨는지요?
답) 역사에 대한 관심은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깨알 같은 글씨로 인쇄된 5권짜리 삼국지를 읽었는데 그때부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단재 신채호 선생님 전기를 읽고 그분의 역사의식에 크게 이끌렸습니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고 혁명가였던 단재 선생님의 전기를 읽고 난 후부터 장차 역사를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그 때의 마음이 그대로 이어져서 역사학과를 선택하였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때가 80년대 초였는데, 당시의 시대상황이 많이 가팔랐지요.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대신에 저 스스로가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단했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문) 일반적으로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을 아래로부터 혁명으로 전국적인 반봉건항쟁이자 반외세(반일) 민족항쟁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장님께서 생각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답) 아래로부터 혁명인 동학농민혁명은 말 그대로 ‘일대사변’입니다. 동아시아 역사공간에서 한중일 삼국을 비교해보면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커진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근대(近代)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3국의 상황은 서로 사뭇 달랐습니다. 일본은 위로부터 혁신인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중국과 조선은 무술변법과 갑신정변이라는 위로부터의 개혁에 실패하였고, 아래로부터 혁명을 이루고자했던 태평천국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이 자국의 지배층과 외세의 결탁으로 저지되면서 반식민지와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근대의 관문에서 동아시아 3국의 여러 대응에서 단연 으뜸의 위상을 지닌 사건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중국의 아래로부터 변혁지향성을 보였던 태평천국운동은 그 지도부의 불명확한 정체성으로 인해 뚜렷한 한계를 보였지만 조선의 농민들이 ‘사람이 하늘이다’는 차원 높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들어 올린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양척왜라는 가치는 서구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명확하게 읽어내고 여기에 대응한 동학농민혁명은 그 차원을 달리하는 으뜸의 위상을 지닌 일대 사변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저희 재단은 동학농민혁명 애국애족 정신의 범국민적 확산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전북 정읍시 황토현전적지(국가사적 295호) 일대에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당초 2017년 말 완공목표였으나 이전 정부에서 지방비 분담을 요구하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대통령선거 이후 전액국비로 사업비가 반영되어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2017년 여름철 이사장님께서 대통령직속기구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전문위원단장으로 활동하실 때 이 사업이 재개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답) 참여정부 때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입법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라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기반 구축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동학농민혁명은 많게는 수십만의 희생자가 발생한 대규모의 농민항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반란사건으로 왜곡되고 축소된 채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져왔기 때문에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할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여 사업의 타당성, 경제성 검토 등을 거쳐 전액국비사업으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까지 마쳤는데, 지난 정부에서 명확한 근거도 없이 지방비 50%를 분담하라고 하면서 정부예산을 반영하지 않아 중단된 상태라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확인해보았는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논의했습니다. 중단 위기에 놓였던 공원조성사업이 다시 전액국비가 반영되어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문) 이사장님께서 잘 알고계시는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세계사적 차원에서 전개된 동서냉전체제 구축시기에 빚어진 국내외 정치정세의 극심한 혼란 등을 거치면서 반란사건으로 왜곡되고, 전라도사건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기념사업단체들이 창립되어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이 대중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 결실로 2004년 3월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특별법에 따라 저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설립되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애국애족 정신을 확산하는데 있어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고 말하곤 합니다. 역사가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사실로서의 역사’ 그리고 후대에 의해 인식되는 ‘해석으로서의 역사’가 각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1894년 갑오년 이후 지난 한 세기 동안 ‘반란’과 ‘혁명’이라는 상반된 인식이 공존해온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과 그 의미를 바로세우기 위한 사업은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어떤 사건을 기념한다는 것, 그 행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역사의 현재화’가 아닐런지요?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의 참된 의미도 이 지점에서 깊이 되새겨 봐야 할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이사장님께서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한국 근·현대사는 극심한 부침(浮沈)의 연속이었습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도 시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습니다. 다행스럽게 지난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특별법 제정 이후 줄곧 논의되었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도 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세된 전국적인 반일민족항쟁으로서의 면모를 되살리고, 동아시아적 위상과 의미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동아시아적 위상이나 그 의미에 대한 이사장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답)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중·영전쟁, 이른바 제1, 2차 아편전쟁 등으로 시야를 넓혀서 동학농민혁명사를 재해석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현재화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제1차 점령목표였던 전주성을 점령한 후 전라도 53개 군현에서 근대적인 폐정개혁을 단행합니다. 이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근대민주주의 효시라고 말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거쳐 일본이 단행한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서구에서 이식된 국적불명의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우리와 같은 아래로부터 진정한 혁명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낡은 신분제라는 봉건체제를 개혁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아래로부터 일어나 추구했던 동학농민혁명이 진정한 의미에서 동아시아 근대민주주의 시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 네, 이사장님.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역사학도였던 이사장님과 참 뜻깊은 대담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정신을 선양하는 일에 대해 사명감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아쉽지만 여기에서 대담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최근 ‘황토현전승일’인 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국가기념일로 확정되어 첫 번째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새기고, 많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 바쁘신 중에서 대담을 수락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