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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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44호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찾아서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찾아서


일시 : 2021. 6. 2.(수) 13시

장소 :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사무실



 

문) 안녕하십니까. 이번 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 <지역대담>에 경상북도 상주시에 사무실을 두고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사업을 위해 애쓰고 계시는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김봉기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들을 위해 회장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 녹두꽃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봉기입니다. 저는 상주에서 1993년부터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에 몸을 담은 후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본래 지역에서 미술 판화가로 활동하면서 민주단체협의회 등을 통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해왔습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4기 이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문) 네, 회장님께서 처음 1993년부터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고인(故人) 강효일 선생님 등과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추진해오셨지요? 경상도 지역 그 중에서도 이른바 ‘TK지역’이라 일컬어지는 곳으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인식이 전라도와는 사뭇 달라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강효일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어쨌거나 불굴의 의지로(웃음) 1993년부터 강효일 선생님과 회장 같은 뜻있는 분들이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줄곧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추진하고 계시는데, 그동안 펼쳐온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 관련한 사업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갑오년 농민들의 의로운 외침, 만민이 평등하고, 외세의 침략에 결연히 맞섰던 그분들의 구국애민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고자 1994년 4월 2일 상주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 창립식을 겸한 초청강연을 가졌습니다. 그때 강사가 고(故) 이이화 선생님과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던 신영우 교수님이셨습니다. 그때 문병학 부장님이 이이화 선생님을 모시고 행사에 참석하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문) 맞아요. 그랬었지요. 1994년 4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전주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했었습니다. 100주년 기념대회 추진과 관련하여 제반사항을 결정하기 위하여 전주에 있던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였는데, 그날이 바로 상주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 창립식 전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주사업회 이사직을 맡고 계셨던 이이화 선생님께서 전주에 오셔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이이화 선생님과 제가 상주로 내려갔습니다. 어쨌거나 역사특강과 함께 창립식 가진 후 상주계승사업회에서 많은 사업들을 추진하였지요?


답) 네, 1994년 6월 13일 ‘궁궁을을’이라는 주제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공연을 상주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가졌고, 7월 7일부터 11일까지 상주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녹두꽃 떨어진 그 이후’라는 주제 아래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미술 기념전을 성대하게 가졌습니다.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에는 상주 동학농민군을 처형한 장소인 상주관아 앞 옛 태평루 자리와 상주시내 일원에서 명정과 만장 등을 앞세운 풍물패가 거리행진을 한 다음에 노제 형식으로 동학농민군의 영령을 위무하는 위령제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위령제가 의미를 더했던 것은 동학농민군의 원혼을 위무하고자 선거리 무당패가 진혼굿 한마당을 펼칠 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들이 함께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100주년 이전까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대중적인 역사인식이 반란사건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100주년 이전에는 유족이라고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에서 펼쳐진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힘입어 우리 상주에서 위령제가 열리니까 비로소 유족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날 위령제에 함께 참여한 유족들이 소리 없이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멍해집니다.



 

문) 맞습니다. 저도 태평루에서 올린 위령제 때도 참석했습니다. 위령제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할 때 참가했던 유족 몇 분들의 얘기에 분위기가 숙연해졌었지요.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이듬 해였던가 1996년도였던가> ‘상주동학농민혁명군상’을 건립하셨지요? 1995년인가 1996년인가? 많이 추웠었는데, 제가 그 농민군상 제막식에도 참석했었거든요. 상주천변에 기념동상을 세우기까지 참 사연이 많았지요?


답) 1994년 11월부터 상주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상주 동학농민혁명군상’을 제작·건립하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원래 이 기념동상은 상주 동학농민군의 훈련장이자 나중에 동학농민군을 처형했던 처형한 장소였던 남사정 터, 현재 경상북도 도립도서관이 들어서 있는 곳에 세우려고 계획하고 추진하였는데 동학농민혁명군상 여기에 ‘혁명’이라는 글자 때문에 세우는 것을 승인할 수 없다고 당시 상주도서관장 등이 완강하게 맞섰습니다. 그래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석무 의원의 협력을 받아 1995년 7월 13일 “상주동학농민혁명군상 건립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건이 제177회 국회(정기회) 제10차 교육위원회 (1995.12.13.)에 상정되었고, 그 결과 국회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의결하였다는 등 그 결과를 통지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념상을 세울 장소를 구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1996년 4월에 상주시 가장동 상주대학교 앞 소천교 공원에 기념상을 건립하라는 상주시 허가가 나서 1996년 7월 1일 혁명이라는 단어를 빼고 ‘상주동학농민군상’건립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여 11월 1일 완공, 그 이튿날인 11월 2일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당시 기념상 건립에는 상주시청을 비롯하여 상주시의회, 상주산업대학교, 농협중앙회 상주지부 등 35개 기관과 단체가 함께하였고, 전국 기념사업단체 임원과 회원은 물론이고 상주시 서일목 씨 외 121명이 성금을 내는 등 힘을 정성을 모았었습니다.



문) 이후에 상주 농학농민군상이 훼손이 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등 사연이 많았지요? 그 결과 ‘상주 동학농민군기념비’가 세워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경위를 말씀해 주십시오.


답)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동학농민의 의로운 외침과 갑오선열의 실천을 본받아 이어가고자 상주 동학농민군상을 조성하였으나 2008년 7월에 상주 김천 간 도로공사 때 기념상이 일부 훼손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갖고 기념상은 철거하기로 하고, 그 대신 우리 사업회에서 요청한대로 상주시가 빗돌과 건립 장소를 마련하여 현재 천봉산 밑 임란북천전적지 앞 북천공원에 기념상건립의 정신을 담아 새롭게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기념비가 웅장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민족사적 의의를 일깨우기 위해 상주시민들의 정성이 모아졌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념비입니다. 이 기념비는 상주 시민의 자존심이자 상주의 미래를 열어 갈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늘 그 자리를 지켜갈 것입니다. 기념비 제막식 때 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시던 이이화 선생님과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던 문부장님도 함께 참석하여 격려해주셔서 힘이 되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문) 기념비를 건립한 이후에 이곳에서 매년 위령제를 지내왔지요? 추모제에 참석할 때마다 추워서 갑오선열께서 후손들에게 뭐하느냐고 나무람 하시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는데....


답) 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동학농민혁명기념비 앞에서 매년 음력 10월 22일을 기해 위령제를 지냈습니다. 그날이 바로 1894년 동학농민군이 상주읍성을 함락한 날이거든요. 그러다가 2014년부터는 상주읍성 안 왕산 역사공원에서 위령제 및 동학농민혁명 문화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는 10월에도 제127주년 상주동학농민혁명군 위령제와 제8회 동학농민혁명 문화제를 추진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념사업을 추진해온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116주년 동학농민혁명 전국 기념대회를 상주에서 개최한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주최한 기념대회를 상주에서 개최한 것은 정말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반란사건으로, 전라도에 국한된 지역적 민란 등으로 왜곡되고 축소되어왔는데, 일제에 의한 이런 역사왜곡과 축소는 이미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이 전국적으로 펼쳐지면서 극복되었잖아요? 그래서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고, 2019년에는 국가기념일까지 제정된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앞으로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제주4·3항쟁이나 5·18민주화운동과는 달리 전라도 지역을 벗어나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기념식을 펼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적인 면모와 그 위상을 되살리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 네,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되던 2004년 가을에 창립된 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때부터 기념일 행사를 서울을 비롯하여 충남 공주시·태안군, 전남 장흥군, 강원도 홍천군 등지를 순회하면서 기념대회를 펼쳤고, 문체부 특수법인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출범한 후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 등지에서 기념대회를 개최하였지요. 그러다가 지난 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5월 11일,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크게 승리한 황토현전승일로 제정되었는데, 이후 서울 광화문광장, 전북 정읍 황토현전적지, 그리고 올해는 서울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기념식을 개최하였습니다. 회장님 말씀처럼 앞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식 개최를 활용하여 일제가 애써 왜곡·축소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적인 위상과 그 면모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과는 달리 우리 상주지역의 지역 정서 등으로 기념사업 추진에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이점에 대해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가 지역별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 상주지역에서도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지금까지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염려와 함께 안타깝게 여기면서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색깔론까지 들어 상주경찰서 정보과에서 기념사업을 하는 사람들 뒷조사까지 하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상주지역은 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유림의 활동이 많은 곳이어서 동학농민혁명을 아직도 ‘동학란’이라고 말하는 세력들이 많습니다. 여기다가 갑오년 당시 유림이나 민보군 편이었던 사람들의 후손과 동학농민군 편이었던 사람들의 후손들 사이 간극이 지금도 표면으로 확연히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런 점들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을 제정한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문) 네, 상주지역에도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가 많지요? 또 100주년 기념사업 이후에 건립한 기념시설물들도 있을 덴데,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상주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는 상주시내 전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시내권역과 중화 6개면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우선 시내권역 유적지로는 상주읍성 태평루 향청 아리랑고개, 남사정, 북장대, 기념비 등이 있고, 낙동강 언저리에는 일본군 낙동병참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관련 유적으로 도남서원과 우산서원 등이 있고, 효곡리 윗 왕실마을과 소리마을, 공성법소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모동, 모서, 화남, 화북, 화서지역에 앞재마을, 동관리 절곡부락, 강선보 머리무덤, 모동 중모장터와 반계리 주막터, 광주원터, 화령 장터 등지에 관련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또한 함창, 이안, 공검 지역에도 있고, 외서 지역에는 동학교당과 관남지, 태봉병참부 등이 있습니다.



문) 상주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갑오년(1894)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근대사에 민족운동의 효시입니다. 반봉건 반회세의 깃발아래 이 땅의 자주와 민권을 수호하려는 의분의 봉화가 전국에서 솟아오를 때 상주지역에서도 혁명의 횃불이 높이 올랐습니다. 특히나 1894년 여름 일본군이 경복궁을 무단점령한 후 청일전쟁을 벌이기 위해 부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상주, 김천, 구미, 석문, 문경 등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병참부를 설치하고 전선을 가설하는 등 침략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상주 동학농민군은 병참부 관련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하는 등 반일의병의 기치를 적극적으로 들어올리고 활동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봉건 지배세력의 탄압과 일제의 무력침략으로 그 숭고한 뜻이 좌절되었지만 그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지역에 국한된 반봉건 민주항쟁으로 왜곡되고 축소된 것을 반드시 바로잡아서 우리 경북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불을 당긴 동학농민군의 반일의병의 기치와 그 정신을 더는 미루지 말고 되살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전국적인 위상과 그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데 힘을 기울여나갈 생각입니다.



문) 상주지역에서 계승사업을 추진하면서 상주시 은척면의 동학교당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상주시 은척면 우기 1길 64에 있는 동학교당은 동학농민혁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척면 동학교당은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이후 공주 출신인 김주희(1860~1994)가 1904년에 상주에 와서 경천교를 세우고 이곳을 포교의 근거지로 삼으면서 1915년 지금의 자리에 교단을 건축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곳 은척교당에서 경천교는 1943년까지 포교활동을 펼치면서 교세를 확장하는데 힘을 썼는데, 그 경천교 본부였던 곳이 바로 은척면 동학교당입니다. 그러니까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조사도 없이 마치 상주동학농민혁명의 핵심적인 가치를 가진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점은 경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은척면 동학교단에는 현재 교기·전적·가사·판목·인장 및 생활용품 등 유물 1084점이 보관·전시되어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유물들은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척면 동학교당에 있는 유물들은 종교사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그런 쪽으로 보존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혁명이 끝난 이후 동학이 종교로서 분파로 파생되던 때 일인 은척면 동학교당의 역사적 의미는 엄연히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회장님. 상주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임원진과 회원 구성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함께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회장과 사무국장을 비롯하여 현재 80여 명이 상주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그 위상을 공부하고 대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애국애족정신 선양은 물론이고, 갑오년 선열들께서 지향했던 인간존중, 반부패 등의 정신을 잘 받들어서 정의롭고 민주적인 상주를 만들어나가는데 힘이 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기관 및 단체들과 연대를 확대해나갈 생각입니다.



문)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때로부터 꼭 110년만인 지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그로부터 15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때로부터 꼭 125년 만인 지난 2019년 2월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이제는 달력에도 5월 11일 칸에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라고 새겨져 나옵니다.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해 노력하시는 회장님 입장에서 위와 같은 일들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답) 제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 33살 때였습니다. 이때부터 상주계승사업회 사무차장, 사무국장 등을 거쳐 현재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햇수로 28년이나 되었네요. 참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란으로 일컬어지던 갑오년의 역사를 10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바로세우고, 그런 노력의 결실로 2004년 특별법 제정되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정명(正名)을 찾았고, 2019년에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제정되었잖아요? 이런 역사적인 일에 저도 작으나마 기여하였다는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란에서 혁명으로 대중적인 역사인식 전환은 가져왔지만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왜곡되고 축소되어온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그 위상은 아직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였거든요. 그래서 저희 상주계승사업회는 앞으로 일본군병참부를 중심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군의 반일의병의 정신을 복원하는데 보다 힘을 집중시켜나갈 생각입니다.



 

문) 상주지역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해나가는데 필요한 점이 무엇이라고 느끼고 계시는지 하는 점과 앞으로 상주동학농민혁명 계승사업회에서 추진해나갈 사업계획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기념사업 추진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전문성 있는 학술적인 토론과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현재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에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축소되어온 동학농민혁명사에 대한 재인식을 기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학술토론이나 역사강의 등이 절실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상주지역에 산재해 있는 유적지 정비를 통해, 기초적인 작업으로 우선적으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및 기념시설물에 대한 안내표지판 설치 등을 통해 상주시민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지역 상주에서도 매우 강력하게 일어난, 반봉건 항쟁과 반일의병 투쟁이 강력하게 전개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알리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더 하시고 싶은 얘기나 빠뜨린 얘기가 있으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전국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념사업단체가 30여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나마나 다들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중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체계적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념사업단체들에 개해 사업비를 비롯한 재정지원을 비롯하여 여러 측면에서 도움을 주실 것을 부탁말씀 드립니다.



문) 네, 회장님 긴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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