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찾아서
일시 : 2021. 7. 28.(수) 11시
장소 :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사무실

문병학 : 이번 호 『녹두꽃』 <지역대담>은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김선덕 회장님, 그리고 윤여진 부회장님 두 분을 모셨습니다. 바쁘신 일정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 분들에게 두 분 각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선덕 : 『녹두꽃』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선덕입니다. 저는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성장한 논산토박이입니다. 논산에서 살면서 1993년에 논산 농민회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농민회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윤여진 : 안녕하세요.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윤여진입니다. 1988년부터 논산 등지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육문화예술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2019년 사단법인 충남민족예술인총연합(이후, 충남민예총)을 창립할 때 멤버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 충남민예총 논산지부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문병학 : 2021년 7월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는 모두 34개입니다. 올해 들어 충남 천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고, 경기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지난 해 7월에 창립한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가 서른두 번째로 설립되었습니다. 창립할 때까지 여러 어려움들도 많았을 텐데 그간의 경과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선덕 :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던 지난 1994년 전후로 전라북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전개되었잖습니까? 그런 활동들을 보면서 저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논산에서도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해나갈 단체를 창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한 단체를 창립한다는 것이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어서 지난해에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창립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논산과 관련성이 아주 깊으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라는 점을 시민들이 갖게 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과 군사정권 등으로 이어지면서 동학농민혁명이 반란사건으로, 전라도사건으로 줄곧 왜곡되고 축소되어왔잖습니까? 그래서 그동안은 동학농민혁명 그러면 전라도 정읍이나 충청도 공주 이렇게들 생각해왔잖아요? 그래서 논산과 동학농민혁명을 연결시켜내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 점이 가장 어려웠고, 그래서 단체 창립이 많이 늦어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여진 : 맞습니다. 논산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동학농민군 남접과 북접이 공주로 진격하기 이전에 연합한 곳이다, 뭐 이런 정도였잖습니까? 그러다보니 논산지역의 주민들에게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많았습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창립된 기념사업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전개하여 분위기가 많이 고양되긴 했지만 우리 논산에서 바람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김선덕 회장
문병학 : 네, 두 분 말씀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기념사업단체가 창립된 곳은 대체로 큰 전투가 있었다든가 하는 지역들입니다. 논산지역 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많지만, 지난 100년 동안 특정지역의 민란으로 치부되면서 우리 기억에서 멀어져 그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곳들이 많습니다.
김선덕 : 네, 부장님 말씀처럼 전국적인 반일의병전쟁으로서의 역사적 위상과 그 의미가 거세된 채 100년의 세월을 지나오다보니 논산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의미와 그 위상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적으로 전개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전개되면서 대중적인 관심이 조금 높아지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19년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이 제정되고 난 후에 비로소 우리 논산에서도 단체 창립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가기념일 제정이 단체 창립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병학 : 네, 지역에서 기념사업 단체를 창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우선은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고, 여기에 해당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어야 비로소 논의가 가능해지는 측면이 있지요.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념사업 단체가 총 34개인데, 그 창립연도를 통해서도 이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 34개 단체 중에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창립된 단체가 9개 단체입니다. 100주년 기념사업이 끝난 후 한동안 단체 창립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4년 3월 특별법이 제정된 후 20여 개 단체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제정된 후 5개의 단체가 창립되었지요.
윤여진 : 네, 확실히 전국적인 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인식의 전환과 함께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높아져야 지역에서 움직임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우리 논산 지역에서도 이전부터 단체 창립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는 있어왔지만, 여의치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국가기념일이 제정되어 정부주최로 기념식이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열리고, 이런 일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여론이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이런 속에서 논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 그러니까 논산농민회, 논산교직원노동조합, 충남민족예술인총연합 논산지부를 비롯하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이들 단체 임원과 회원들이 힘을 모아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창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선덕 : 논산에는 이전부터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있었습니다. 그 중 논산시 연산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만복이네공부방지역아동센터’에서는 이전부터 ‘동학농민혁명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또, 논산농민회에서도 동학농민혁명사를 공부하고, 유적지를 답사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 11월 논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라는 모임에서 윤여진 선생님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단체 창립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이후 논의가 진전되어 마침내 2020년 9월 6일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창립 직후인 작년 11월 7일에는 ‘제1회 논산시민 평화대동 한마당’행사를 기획하여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전시회와 함께 1894년 남접과 북접의 동학농민군이 연합전선을 형성하였던 역사적인 장소 ‘소토산’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가졌으며, 이를 ‘그리운 소토산 해방구’라는 문화예술작품으로 제작하여 공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윤여진 부회장
문병학 :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논산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과 그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기 위한 기념사업을 추진해나가실 텐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시는지요?
윤여진 : 저희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그리고 충남민예총 논산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모임에서 논산지역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전통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모임들에서 논산지역에 깃든 제반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서 그 맥을 동학농민혁명 정신과 연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논산은 삼국시대 때, 그러니까 고구려·신라·백제 시절에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한 나·당연합군에 맞서 대항했던 역사적 사실 등도 감안해서 지역에 흐르는 역사적 맥락을 연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논산은 잘 알려진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잖습니까?
문병학 : 네, 제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팀을 인솔해서 논산을 지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서울을 오르내릴 때 논산 부근을 지나면서 “논산은 참 한이 깊은 곳”이라는 생각을 갖곤 합니다. 외침과 질곡이 많은 우리나라 어딘들 한이 서리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만 방금 부회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곳 논산도 그 한이 다른 곳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회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백제가 멸망하게 된 결정적인 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황산벌전투는 물론이고,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쫓겨나 고려로 귀화했다가 나중에 수십 만 대군을 이끌고 자기가 세운 후백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내려오다가 이곳 논산벌에서 크게 싸웠잖습니까? 이 싸움에서 견훤의 아들 신검이 패배하여 후백제가 멸망하잖아요? 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논산(연산)의 개태사가 세워졌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고, 그래서 견훤의 무덤도 지금 논산 육군신병훈련소 근처에 있잖습니까? 그로부터 수 세기(世紀)를 훌쩍 뛰어넘어 1894년 갑오년 때 논산벌, 정확하게 말하면 논산과 부여의 위쪽이 공주 이인과 우금티 등지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과 관군 연합부대가 큰 전투를 벌였지만 동학농민군이 패배하고 말았지요. 나아가, 논산에는 지금 민족분단의 한 상징이라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 육군신병훈련소가 있는 곳이라서....
윤여진 : 네, 부장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논산의 역사에 대해 부장님 얘기를 듣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점이 많습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을 물리치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남긴 숙제, 이를 테면 외세(外勢) 문제는 현재까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지요.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때 우리 논산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이 연합부대를 형성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역사적 필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 중에서 농민군의 사기가 가장 드높았던 시기가 남·북접 농민군이 논산에서 연합전선을 형성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소토산, 그곳에서 출정할 때 농민군의 사기는 말 그대로 충천(衝天)했을 것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했을 그 사기도 끝내 공주 우금티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근대적인 신무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우금티에서 패배한 후 다시 논산 황화대에서 재기를 도모했으나 이때에도 응전(應戰)다운 응전도 못해보고 패배하여 깊은 한을 남긴 곳이 우리 논산지역입니다. 또, 우금티와 황화대에서 패배한 농민군 잔여세력이 논산을 지나 진산과 금산을 거쳐 현재 전북 완주군에 속한 대둔산 형제바위로 숨어들어 1895년 2월까지 처절하게 항전했지 않습니까? 그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 바로 우리 지역 논산입니다.

문병학 : 네, 부회장님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사실,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추진하다보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지역의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를테면 역사적 사실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태도가 때로는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두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해당 지역이 지닌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전통을 깊이 살펴서 기념사업의 외연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선덕 :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작년에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창립 무렵의 얘기를 부연한다면, 당초 창립일자를 6월 25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점염병이 확산되면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9월 들어서야 창립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7월 12일 논산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9월로 접어든 후 창립행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창립한 날로부터 1주일 후인 9월 13일에는 동학농민군 지도자 용암(龍庵) 김낙철(金洛喆) 대접주님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김낙철 대접주님의 손자 김영웅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님도 함께 참석했었습니다. 김낙철 대접주님은 갑오년 당시 전라도 부안에서 활동하셨던 분이지요. 이분은 동학농민군이 패배한 후 고향을 떠나 서울, 천안 등지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당초에 그분 묘소가 당초 서울 이태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1951년 경 이장(移葬) 하여 현재 논산시 은진면 남산리 산 37-10에 모셔져 있습니다.

문병학 : 네, 김낙철 대접주님 묘소 외에도 논산 지역에 동학농민혁명 유적지가 많이 있지요? 명재(윤증) 고택이라든가 황화대전투지 등등.... 논산 지역 유적지를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선덕 : 네, 논산지역 유적지로는 먼저 노성관아를 들 수 있고, 동학 다큐소설 『은월이』에 나오는 연산현감 이야기로 유명한 연산관아와 염정골(지금의 금산군), 남·북접 농민군이 연합부대를 형성했던 소토산 등이 있습니다. 또, 동학농민군이 우금티 전투에서 패배한 후 후퇴하던 중에 재기를 위해 진지를 구축했던 황화산성, 현재 은진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은진관아, 노성산성 등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현재 논산지역 유적지로 명재(윤증)고택과 황화대전투지만 소개되고 있는데 수정·보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병학 : 네 회장님, 지금 저희 재단에서 전국의 유적지와 기념시설물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가능한 이른 시일에 논산지역의 유적지를 수정·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회장님 그리고 부회장님, 갑오년 당시 남·북접 농민군이 연합전선을 형성했던 장소가 ‘소토산(小土山 혹은 高峰, 圓峰)’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었나요?
윤여진 : 논산시 소재 샌뽈여자고등학교라고 있는데, 이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대훈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오래전부터 소토산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인으로부터 받은 자료, 일본공사관 기록 등으로 소토산 위치를 확인하였습니다. 주한일본공사관 기록에 소토산에서 서남쪽으로 1,200미터 떨어진 곳에 황화대가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황화대는 확실하고 소토산은 불확실한 속에서 확실한 황화대를 중심으로 반경 1,200미터 떨어진 곳의 산을 찾은 것입니다. 논산은 산이 많지 않고 들이 넓은 곳이라서 문제해결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황화대로부터 1,200미터 거리의 산이 다름 아닌 샌뽈여고와 대림아파트(옛 대건중·고등학교 자리) 뒤쪽 산,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던 산입니다. 그 산에서 예전에 백골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은 이곳을 백골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소토산 그러니까 그냥 작은 산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1894년 당시 소토산에 집결한 남·북접 농민군 숫자가 적게 잡아도 2만 명이 될 것이라 합니다. 2만 명이 장막을 치고 허기와 추위를 달래며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는 것을 보면 결코 작은 산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런 점을 비춰봤을 때에도 황화대에서 1,200미터 거리에 있는 샌뿔여고와 대림아파트 뒤쪽 산이 소토산인 게 분명합니다.
문병학 : 네. 장편소설 ‘녹두장군’을 쓰신 송기숙 선생님께서 1980년대 중반부터 소토산이 어디인지 찾으려고 애를 쓰셨는데 결국 못 찾았었거든요. 지금이라도 이렇게 확실히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회장님, 논산계승사업회에서 앞으로 추진해나갈 사업계획 등에 대해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선덕 : 무엇보다도 남·북접 농민군이 연합한 장소인 소토산 유적지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사업을 추진해나갈 생각입니다. 아직은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이지만 소토산 일대를 ‘소토산 논산 평화공원’으로 조성하고자 합니다. 1990년대 초까지 대건중·고등학교가 있었던 곳이 현재 대림아파트 자리입니다. 대건중·고등학교를 옮길 때 그곳에 아파트를 짓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더 산자락을 깎아내서 대림아파트를 지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소토산이 상당부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주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논산계승사업회에서는 논산시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하여 더 이상 소토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방지대책을 세우고, 이곳을 잘 보존해서 장차 평화공원으로 정비하여 논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역사공원으로 조성해나갈 생각입니다. 기념재단에서도 이 사업에 각별히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병학 : 뭐든 일단 시작하게 되면 다 되더라고요.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속담도 있잖습니까? 두 분의 열정이면 소토산에 꼭 평화공원이 건립될 것 같습니다.(웃음) 바쁘신데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