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존중하는 사회, 동학농민혁명에 길을 묻다
김양식 청주대학교 교수
1.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인간 존엄성 문제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난 20세기 역사가 남긴 여러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폭발하는 한편,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교차되면서 격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한 모순과 진통은 최근 경험한 ‘촛불’과 ‘태극기’에서 상징적으로 확인된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 내부에 축적된 여러 사회적 모순과 폐단이 드러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이른바 갑질, 내로남불, 학폭, 성폭력, 편 가르기 등이다.
실제 우리 사회는 헌법 1조에서 명시한 ‘인간 존엄성’의 선언적 의미와는 달리 ‘서로 존엄한 사회’에서 멀어져 있다. 이는 숭고한 생명의 가치를 위협하여 생명 경시현상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실제 최근 잇따른 고위인사의 자살이나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은 인간 존엄성과 생명가치를 경시하는 우리 사회에 경고음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존엄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한국 근현대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한국사회가 서로 존엄한 사회에서 멀어진 것은 한 순간의 산물이 아니라 지난 19-20세기의 장기지속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1945년 해방으로 일본 식민지로부터 정치적 독립이 되었지만, 사회구조는 여전히 연속선상에 있다. 그 단적인 증거가 식민지 트라우마가 아직도 기성세대를 짓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의 뿌리는 식민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바로 조선사회가 주체적으로 근대사회로 전환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이어진 것이 결정적이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의 내부를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야 한다.
2. 다시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다
1860년에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19세기 조선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나, 동학의 역사적 구현은 기존 질서를 뒤엎는 사회혁명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수직적인 불평등사회를 전복하여 수평적인 평등사회로 나가가야 한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다.
동학농민혁명의 목적은 한 마디로 보국안민에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국안민의 주체가 일반 백성, 즉, 민중인 점이다. 이것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부각된 것으로, 중세의 수동적이고 종속적이며 즉자적인 민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대자적인 근대의 민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것으로, 부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인간 존엄성의 선언이기도 하다.
실제 동학농민군은 1894년 3월 20일 무장기포 직후 발표한 4대 강령에서 첫 번째 강령으로 ‘사람을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또 동학농민군 12개조 기율(紀律)을 보면, ‘항복하는 자는 사랑으로 대하라’,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병자에게는 약을 주라’ 등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도덕성과 자기규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는 사상을 역사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동학농민군이 혁명을 통해 혁파하고자 한 것은 비인간적인 신분제였다. 폐정개혁안 12개조를 보면, 12개조 중 4개가 신분제와 관련이 있다. 특히 ‘제5조 노비문서는 소각한다’, ‘제6조 7종의 천인 차별을 개선한다’ 등과 같은 조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불평등한 제도를 철폐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인간 존엄성 실현을 위한 치열한 역사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 공간과 실천적 노력은 일본의 무력 개입으로 실패하였고, 그 실패는 식민지로 나가는 서막이 되었다. 식민지는 기본적으로 폭력과 차별을 기반으로 한 체제였다. 일본의 한국 지배는 폭력과 차별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심하였고, 그래서 1919년 3.1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저항의 강도 역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았다.
3.1운동은 동학의 맥을 잇는 천도교가 주도하였다. 왜 다른 세력이 아닌 천도교가 3.1운동을 주도하였을까? 그 사상적 기저에는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는 사상이 뒷받침되었다. 3.1운동 당시 민중들이 외친 ‘독립’은 단지 나라의 독립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부자유와 불평등으로부터의 독립의 의미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민족적인 시각에서만 3.1운동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개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회복하려는 목소리와 몸짓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3.1운동은 동학농민혁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3.1운동은 천도교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로 표현되는 문명개화론자들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일으켰으나, 이는 동학이 역사적 헤게모니를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3.1운동 이후 천도교는 신‧구파로 갈리어 대립하였다. 주도권을 장악한 신파는 민족개조론과 자치론으로 기울어 동학의 기맥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동학의 전통과 기운은 왜소화되어간 반면, 사회진화론과 문명개화론에 편승한 이성 중심의 인간관이 식민지 지배수단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열등감, 자기부정, 패배의식 등에 잠식되었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독재체제를 재생산하는 문화 도구로 활용되어 식민지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존엄한 사회를 위하여
지난날 우리는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을 통해 인간,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조선시대의 신분의식이 사라진 곳에는 식민지 트라우마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이것을 치유하는 길은 청산과 단절 못지않게 지난 역사를 ‘직시’하여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를 대하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에 대한 해석이다. 이들 혁명적인 두 사건을 통해 인간 존엄성의 목소리를 소환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어느 때보다 지구 온난화와 생명의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현 시대에 필요한 실천적 대안이 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젊은 세대의 움직임은 희망적이다. 현재 한국 청년들의 세계관은 기성세대와 다르다. 기성세대가 식민지 트라우마와 독재시대에 길들여진 집단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1980년대 이후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청년세대는 20세기 한국의 집단 무의식에서 자유롭다. 그들은 인권과 민주시민 교육을 받은 세대일 뿐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삶에 익숙하다. 특히 그들은 개인의 주체성과 개성을 존중하며 자유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여러 팬덤문화에 적극적이다. 그러면서도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면서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희망은 신바람이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고조선 이래 매우 영적인 민족이었고 동학도 그런 전통 위에 있었다. 오늘날에도 서로 존엄한 사회를 지향하는 영적인 전통은 단절되지 않은 채 한국인의 문화유적자 밈(meme)에 살아 있어, 그것이 때를 만나면 신명(神明)으로 이어지고 신바람 나는 세상을 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신바람 나는 세상은 늘 공감이 있고 해방된 세상이었으며 긍정적인 마음과 에너지가 충만하다. 이러한 신바람은 최근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K-팝, 뮤지컬, 영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 신바람이 불고 있는 한국사회는 서로 존엄한 사회를 열어갈 가능성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바람은 역사 속에서 사람다움을 지향해 왔기에 서로 존엄하는 인간사회를 만들어가는 추동력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