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찾아서
일시 : 2022. 1. 26.(수) 12시
장소 : 아산기념사업회 사무실

문) 이번 호『녹두꽃』지역대담은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아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하 아산기념사업회) 장명진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바쁘신 일정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 분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녹두꽃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단법인 아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명진입니다. 저는 1985년부터 전국농민회의 전신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농민회(아산지부)에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 사무처장을 맡아 활동했고, 충남도연맹 의장직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농민회 활동을 비롯해서 아산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우리 충청남도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현재는 (사)아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충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단체협의회 회장, 동학농민혁명참여자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습니다.

문) 네, 아산지역에서 이사장님의 시민사회 단체 활동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워낙에 자기 이익 이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허다한 물질만능주의 시대 세상에 딱히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정의를 위해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을 시민단체 활동에 몸담아 오신 것에 대해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사실 진보라는 걸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저는 진보를 “자기가 이익은 커녕 손해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직이나 사회의 정의를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사장님은 참된 진보주의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터뷰하러 오는 길이 좀 멀지만 아주 기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사장님처럼 전국 각 지역에서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애쓰고 계시는 기념사업단체가 2022년 봄 현재 34곳이나 됩니다. 그래서 각 지역에서 기념사업단체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늘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저는 재단에서 월급을 받고 있어서 말입니다.(웃음)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2015년에 창립하였지요? 창립 당시의 배경과 함께 지금까지 활동 연혁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아산기념사업회는 2015년도에 창립하였습니다. 창립 초창기 때 이사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 현재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사무총장을 맡고 계시는 정해곤 선생님입니다. 정해곤 선생님께서 15년과 16년 이사장을 맡아 고생하셨고, 그 뒤를 이어 부족한 제가 17년도부터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동학농민혁명군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산기념사업회는 아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사회사회단체가 힘을 합쳐서 창립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는 연합체 형태로 창립을 준비하려고도 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못해 그냥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열대여섯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아산기념사업회 창립을 논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아산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대표적인 인물이 정태영 선생님이십니다. 그분의 증손자이신 정해곤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처음에는 조촐하게 시작하였습니다. 부장님께서 잘 알고계시겠지만 우리 아산지역은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에서 볼 때 중요한 기점이 있다거나 중요한 전투가 있었다거나 그러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요한 활동거점이었다거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전투지였다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 아산지역은 동학농민혁명 관련하여 우리 아산지역은 그 역사적 현장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약한 지역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사에 대한 역사연구도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산지역이 정말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갑오년 정월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고부에서 봉기한 후 무장기포, 백산대회, 황토현전투, 황룡강전투 등등 거침없이, 파죽지세로 전라도를 휩쓸고 전라감영 소재지 전주성을 장악했잖습니까? 그 뒤 어찌되었습니까? 조선정부가 전라도 전주성에 들어와 있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해달라고 청나라에게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잖습니까? 그러니까 일본도 자국민보호 등을 명분으로 군대를 조선으로 보냈잖습니까? 그때 청나라 군대가 아산만 삽교천 등등 서해바다로 들어왔잖아요. 일본군도 서해안 인천으로 들어왔고, 이후 일본군이 서해 풍도에 있는 청나라 군함을 공격하여 청일전쟁이 터지잖습니까? 그래서 아산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반외세 반침략 정서가 강하게 대두된 곳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가 내포지역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민심이 흉흉했겠습니까? 두말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하여튼 내포지역은 물론이고 우리 아산지역은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에서 말하면 딱히 알만한 전투가 있었다거나 그러진 않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고 봅니다. 이후 3·1운동 때 이웃의 천안과 우리 아산지역에서 만세운동이 거세게 타올랐던 게 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깊이 자리 잡은 정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맞습니다. 아산기념사업회 창립이 2015년 11월 초겨울이었습니다. 그 다음해인 2016년 창립 1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옛 온양군 관아였던 온주아문 앞에서 동학농민군 희생자 영령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올렸지요? 동학농민혁명 122년 만에 아산지역에서 처음으로 위령제례를 모셨는데, 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으로 저도 위령제에 참석하여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도 많은 사업을 추진하셨지요?
답) 아산기념사업회 출범 후, 첫 번째로 추진한 사업이 아산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의의를 알리기 위한 책자를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산을 비롯한 서해안 내포지역이 주요 전장(戰場)이었던 청일전쟁과 관련된 내용을 수집하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참여자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책자를 발행했습니다. 책을 발행한 후에 위령제를 모셨습니다. 첫 번째 위령제는 아까 부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온주아문 앞에서 모셨고, 그 뒤 두 번째 행사부터는 온양온천역에서 위령제를 모셨지요.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온양온천역으로 위령제 장소를 옮긴 것은 위령제를 모시는 것과 함께 아산지역 동학농민혁명사와 그 역사적 의미를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중적인 곳으로 장소를 바꾸었습니다. 그랬다가 욕심이 생겨서 세 번째 해부터는 이 사업을 문화제로 외연을 넓혀서 우리 아산지역 학생들로 구성된 연극동아리와 연계하여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기다가 시낭송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2019년부터 느닷없이 코로나 전염병이 확산되어 그 이후로는 행사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밖에도 아산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아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힘을 모아 신창현 그러니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정태영 선생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선장면 동학농민군 기포 터에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정태영 선생 묘역에서 위령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2022년 올해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정태영 선생님 서거 100주년입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는 사업추진을 다지는 차원에서 작년에 그분 묘역을 찾아가 위령제를 올렸던 겁니다. 아까 부장님께서 잠깐 언급하셨듯이 현재 전국의 단체가 34개가 있다고 하셨지요? 34개의 단체 중 충남 소재 단체는 모두 9개로 아산기념사업회를 비롯하여 예산, 태안, 당진, 공주, 논산, 천안, 금산,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천안) 등입니다. 그런데 금산기념사업회가 10여 년 전부터 활동을 멈춘 상태여서 8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아가 아직 기념사업단체가 없는 서산, 서천, 청양, 부여 등의 지역에도 기념사업회 창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고자 합니다.
문) 네, 해당 지역에 뿌리를 둔 기념사업단체가 창립되어 활동하는 것이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확산시켜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시민사회단체를 창립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닌데, 이사장님께서 열의를 가지고 추진하시니까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단체를 창립하는데 일정하게 사회적 혹은 지역적 상황을 고려하는 일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념사업단체의 창립연도를 살펴보면,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이던 1994년 전후하여 단체가 창립되었고, 2004년 이후 특별법 제정 전후 그리고 2019년 국가기념일 제정 전후에 단체가 창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답) 맞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 주관적인 조건과 객관적인 조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또는 지역적인 상황에서 조성된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지요. 문부장님도 잘 알고 계시듯이 지난 해 가을에 태안기념사업회에서 백화산 교장바위 아래에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개관하였잖습니까? 그리고 예산기념사업회에서 관작리 전적지를 성역화하기 위해 예산군은 물론이고 충남도청에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지속적으로 업무협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올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정태영 선생님 순국 100주기입니다. 충남지역 저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런 움직임과 성과들을 백분 활용하여 아직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지 않는 시군 농민회 등과 협의를 적극적으로 해내갈 생각입니다. 그럼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미독립무인멸왜운동 기념탑
문) 네, 이사장님께서 갖고 계시는 그 열정에 기대와 함께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기념재단에서 힘을 보탤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호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충남 내포지역은, 아산시 등을 비롯하여 기미년 3․1운동과 아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맥락이 3․1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이런 역사적 흐름을 증거하고 있는 실질적인 사례를 우리 아산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셨다가 순국하신 故정태영 선생님, 그리고 그분이 순국하신 후 그분의 아들 故정수길 선생님이 3․1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일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 네, 그렇지요. 정태영 선생님의 증손자이자 정수길 선생님의 손자 정해곤 선생님이 아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창립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울 종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전국 유족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사무총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이 참 엄중하고 지엄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문) 네, 가슴이 묵근해지는 것이 이사장님, 아까 잠깐 말씀드린 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답변을 얻고자 질문하겠습니다. 아까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충남지역의 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를 만드시겠다고 하셨는데 언제 발족을 하실 예정이십니까?
답) 이미 2018년도에 충남 각 지역에 기념사업단체를 두고 있는 간부들을 모아 충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단체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2018년도에 충남에 있는 기념사업회를 모아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현장투어를 하는 행사를 가졌지요. 그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충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단체협의회를 만들게 되었고 제가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한 달에 한 번 다 같이 모여서 각 지역의 사업 과련 연대교류를 활발하게 했었지요. 충남도청 문화관광과에서 2000만원 정도 동학농민혁명 지원 사업 예산이 나오면 한 지역에 몰아줘서 기념행사를 확대 시켰습니다. 천안, 당진, 공주가 순서대로 해왔고 올해는 논산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상황으로 매달 만나지는 못하고 1년에 4~5번 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직 단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서산, 서천, 청양, 부여가 하루 빨리 단체 형성을 하여 완전한 충남동학농민협의회를 결성하고 싶습니다.
문) 아산지역에서는 동학농민군이 큰 전투를 벌였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해 앞바다를 통해 청나라와 일본군이 조선으로 진출한 통로였고, 실제로 청나라와 일본간 전투가 벌어진 전장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산은 물론이고 내포지역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 반침략, 반외세 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했던 곳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산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가 많을 텐데, 기념시설물이나 유적지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저희 아산지역의 경우에는 동학농민혁명관 관련한 직접적인 유적지보다는 동학농민혁명 이후 이어진 기미독립․무인멸왜운동기념탑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명소입니다. 아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큰 전투가 벌어지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침략 정서, 반외세 정서가 강하다보니 그 정서가 동학농민혁명 이후에도 도저하게 흘러 3․1운동이나 무인멸왜운동으로 힘차게 솟아올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산지역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직접적인 유적지는 아산 관아 터와 그 안에 위치한 여민루가 있습니다.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이 점령했던 곳이지요. 아산관아의 문루였던 여민루는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문) 네, 이사장님. 이사장님과 같이 지역에 굳건히 뿌리내린 분들이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계시기에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더 하고 싶거나 빠뜨린 게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제가 충남에서 나서 충남에서 자랐고, 또 살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마는 충남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의 동학농민혁명보다 결코 그 중요성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라도에는 전남 장성군 황룡전투나 장흥군의 석대들전투, 그리고 전북 전주시 전주성전투나 정읍시 황토현전투 등이 있지만 우리 충남에도 수많은 전투지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잘 알려진 공주 우금티전투, 동학농민군의 기세에 눌러 일본군이 내뺀 당진전투, 그리고 예산군 관작리전투, 홍주전투, 목천 세성산전투, 금산과 진산전투 등등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해서야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된 각 지역의 기념사업단체들에 의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은 물론이고, 국가기념일까지 제정되기에 이르렀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시 한 번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기념사업을 우리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단체협의회는 물론이고 우리 아산기념사업회에서는 충남교육청 등과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충남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데 힘을 쏟는 한편 이를 중고등학교 역사 부교재로 편찬하는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협의해나갈 계획입니다.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충남지역의 역사를 잘 가르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일만이 아니라 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청일전쟁의 전쟁터가 우리 충청남도 천안, 아산, 평택 등지였다는 것을 알리고, 이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의 도탄에 빠진 삶을 구원하기 위해 떨쳐 일어섰던 갑오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할 수 있도록 해나갈 생각입니다.
문) 네, 이사장님. 이사장님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다시 한 번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에 애쓰시는 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사장님, 바쁘신 중에도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