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과 국민이 함께 기억해야 할 동학농민혁명
정탄진 (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 취임 인터뷰
날짜 : 2025. 5. 21.(수)
장소 : 서울 유족회 사무실

2025년 4월, 2년 임기의 (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으로 취임한 정탄진 회장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정근영(자 백현(伯賢))의 증손이다. 전북 고창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30여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장으로 퇴임하였다. 퇴임한 후로는 유족회에 헌신하였다. 2021년 유족회 이사를 맡았으며, 2023년에는 유족회 사무 총장직을 수행하며 유족회 실무에 뛰어들었다.
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녹두꽃』 독자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 12대 유족회장 정탄진입니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열심히 봉사하시는 많은 분들, 그리고 유족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예우 문제부터 우리 유족회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녹두꽃 독자분들께서도 항상 우리 유족회를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 우선 유족회장이기 전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유족으로서, 참여자인 정근영 조부님에 대해 간략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답) 저는 동학농민혁명군의 비서였던 정근영 참여자의 증손입니다. 증조부님께서는 무장현 예전리 상평(현 고창군)이라는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당시 과거시험을 준비했었는데, 무장 손화중 포에서 문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동학농민군의 비서로서 활동하였습니다. 증조부님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4년 『동학농민전쟁(발굴): 인물열전』을 연재하면서 할아버지께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집안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동냥으로 조금 들었을 뿐입니다.
문) 그간 유족회에서 사무총장으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유족회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동학농민혁명유족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답) 처음에는 유족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을 반란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죠.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동학농민전쟁(발굴): 인물열전』을 집필하기 위해 역사학자 고(故) 이이화 선생님께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유족을 찾아냈고, 그 유족들이 열의를 가지고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1994년 3월 3일, 동아클럽에서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창립총회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유족회는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돌아가신 무명(無名) 참여자들의 원통함을 풀고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이루기 위해 결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 회복에 힘써 왔고,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여 참여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습니다.

▲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정근영
문) 그렇군요. 동학농민혁명유족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각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족회장으로서 어떤 포부와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답) 유족회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보다는 회원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신의 일이 있고 가정이 있다 보니 유족회만을 위하자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기에 결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회원들과 잘 화합하고 밖으로는 지자체, 기념사업회, 기념재단과 같은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을 알리고 올바른 인식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창립총회
문) 회장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유족회 운영에서 회원과의 관계가 특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를 위한 방안은 있으신가요?
답) 많은 분은 유족회가 겪을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만 모인다면 경제적 문제야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이 있으면 일을 하면서 서로 신뢰가 형성되고 보람을 느끼게 되어 유족회 활동에 대한 의지가 굳건해집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직장 생활도 해야 하고 가정도 돌봐야 해서 유족회 활동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연령대의 유족들이 유족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문) 유족회 활동을 하면서 뜻깊었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답) 2019년 5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제125주년 동학농민혁명기념식입니다. 2019년 2월 26일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정부 주관으로 진행된 첫 기념식이었습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하여 공식적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추모하고 그들의 뜻을 기렸습니다. 정·관계 인사뿐 아니라 유족, 기념사업단체, 일반시민 등 많은 분이 참여하였고,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된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동학농민혁명기념식에는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등이 참석하지 않아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정부의 관심 부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서울에서 기념식을 개최하여 더 많은 언론의 주목과 국민의 참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 동학농민혁명의 대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나 정부에 요청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새 정부에 기대하시는 점이 있을까요?
답)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31년이 되었지만 반란이 아닌 혁명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여 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국민적 관심을 일으키고 미래 세대에게 동학농민혁명이 잘 인식될 수 있도록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과 교육 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유족회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진취적으로 활동하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무명 농민군과 후손 없이 사라진 수많은 순국선열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문) 우리 기념재단에 바라시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지난 세월, 유족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은 유족회와 재단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재단에서 유족회에 일부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아 관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지원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재단의 하위 기관으로 치부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재단 설립 초창기 유족회와의 유대관계를 복원하여 서로 소통하고 공생하는 관계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기념식이나 예산과 관련된 부분은 사전에 대면하여 서로 조율해 나가야 더욱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재단에서도 기존에 하던 방식을 답습하지 말고 관계 정립을 새롭게 다시 하였으면 합니다.

문) 마지막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후손으로, 그리고 유족회 회장으로서 국민과 사회에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답) 제가 초등학생 때는 ‘동학난’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끝에 동학난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역사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2004),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2019), 세계기록유산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등재(202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동학농민혁명 등재(2024) 등의 과정을 거쳐 동학농민혁명의 큰 뜻이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교과서 용어 변경입니다. 이를 통해 학교 교육에서부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올바르게 교육해야 합니다.
(대담자: 기념재단 기획운영부장 최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