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발행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COPYRIGHT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목차열기
2023년 봄 51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박순만의 증손 박종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박순만의 증손 박종호


일시 : 2023. 1. 12(목) 13:00~16:00

장소 :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실
  이번 『녹두꽃』소식지(통권51호) 유족인터뷰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박순만(朴順萬, 1851~1932) 님의 증손(曾孫) 박종호(朴鐘湖) 선생님을 모셨다. 참여자 박순만 님은 1894년 3월 임실군 운암면 소재 지천리 기포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9~11월 남원지역에서 벌어진 방아치전투와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였다가 패배한 후 약 6년 동안 순창 회문산으로 피신하였다가 귀가하였다. 박순만 님은 귀가한 후 아들 박노철과 함께 동학(東學)과 천도교인이 되어 교화에 힘썼다.
  박순만 님의 증손 박종호는 전북 임실 청웅에서 태어나 군복무를 마치고 공직에 몸담았다가 퇴직한 후 2012년부터 동학농민혁명유족회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와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와 완주군유족회 회장직을 맡아 참여자와 유족 발굴 및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문) 선생님 반갑습니다. 녹두꽃 독자님들께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안녕하십니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박순만(朴順萬) 님의 증손자(曾孫子) 박종호입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던 1994년을 전후에는 박 기자 상자를 쓰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고향인 전북 임실군 지역에서 천도교 활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지난 2020년 가을에 10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셨을 때 25년 동안 천도교 임실교구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대외적인 활동이 어려워졌던 때부터, 그러니까 2012년부터 제가 전북 전주시를 중심으로 임실군과 완주군 등등 참여자 유족 분들과 함께 유족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래서 2013년부터는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들의 본부격인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대의원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였고, 이사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렇게 활동해오는 과정에서 전북 전주시와 인근 완주군 지역에 참여자 유족으로 등록된 분들은 많은데 유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분들과 적극적으로 연계를 모색하여 2019년 4월 22일에는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제가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문) 네... 회장님께서는 오랫동안 공직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임실군에서 근무하셨지요?
답) 저는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일반 공무원 등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아왔습니다. 주로 임실군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면장으로 퇴임하기까지 35년간 공직에 몸담아왔습니다. 1970년 새마을사업을 시작하여 임실군에서 근무하면서 전북도립사격장을 임실군 청웅면에 유치하였고, 두복 제2저수지를 신설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임실군에서는 최초로 청웅면 120만여 평에 달하는 경지정리와 93년에 임실군 삼계면 120만여 평을 경리정리를 하는 등 많은 민원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문)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회장님께서는 현재 전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의 모임인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직을 맡고 계시면서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직도 맡고 계십니다. 회장님께서 유족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답)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왕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희 증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후 아주 자연스럽게 저희 집안은 천도교 임실교구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천도교 임실교구장을 오랫동안 지내셨다는 점으로도 가풍(家風)을 짐작할 수 있잖아요? 하여튼 저희 집안 내림의 영향으로 저는 어릴 적부터 동학과 인연이 아주 깊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활동이 여의치 못하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문) 네, 회장님께서 창립하시고 그 운영에 혼신의 힘을 쏟고 계시는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도 그렇고, 전국 동학농민혁명 유족 모임인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참 많지요? 유족회 활동을 해오면서 선생께서 느끼시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네, 문부장님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시작한 것이 100주년 기념사업 이전부터였지요? 그래서 문부장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무엇보다도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구성원들, 그러니까 회원들이 다들 연로하셔서 그게 제일 어려움이 큰 대목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동학농민혁명이 1894년에 일어났으니 올해로 벌써 129주년 아닙니까? 다르게 말하면 동학농민혁명 때로부터 지금까지 4세대가 지난 것이지요.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고통 받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신분제라는 낡은 봉건제도를 제거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만민평등세상을 이루고자 한 우리나라 민주주의 운동의 뿌리잖아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불법으로 침략한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 전국에서 농민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일어선 반일 의병항쟁이었잖아요?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후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반란사건으로 치부되어왔습니다. 다행스럽게 1994년 100주년이 되던 해에 유족회가 창립되고, 전국 각 지역에서 기념사업단체가 창립되고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에 나섰고, 역사학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하여 동학농민혁명이 반란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었잖아요? 그래서 2004년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 특별법이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되었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인 2019년에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다보니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원들이 거의 80세 90세예요. 물론 유족회 회원 중에서 참여자의 손자 분들도 더러 있지만 증손, 고손이 훨씬 많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족회 활동이 동적(動的)이지 못하고 정적(靜的)입니다. 유족회 회원 분들이 연세가 높다보니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에 열리는 기념식이나 여타의 선양사업에 참여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예요. 이점이 유족회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를 창립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참여자 유족 중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분들을 영입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전주시와 완주군 지역에 거주하고 계시는 유족 분들을 회원으로 확보하였지만 연세가 많기는 매일반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여의치 못하지만 저는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원님들과 힘과 지혜를 모아 적극적으로 선양사업을 추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해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분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 위해 전북 전주시 효자동 신시가지에 위치한 전주동부보훈지청 앞에서 40일 동안 릴레이 시위를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문) 네, 회장님. 여러모로 애쓰십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을 위한 활동은 물론이고, 전주시에 거주하는 참여자 유족 분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전주시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업무협의를 추진해오신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노력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증조부님 얘기를 조금 더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증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셨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요?
답) 제 아버지께서도 말씀을 자주하셨고, 제 작은아버지께서도 증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 참여하셨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자세한 활동 내역까지는 몰랐습니다. 그저 증조부님께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독립운동을 하셨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동학농민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후에 제가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활동과 정신선양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듣고, 책을 찾아 읽고 해서 증조부님의 활동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증조부님께서는 1894년 3월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 봉기 때 참여하셨다는 사실이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1894년 늦은 가을에 남원 인근에서 벌어진 방아치전투, 운봉전투, 남원성전투 등에 참전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 네, 2004년 3월 5일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해 9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위원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록신청을 받아 조사·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참여자와 그 유족을 등록하는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무렵인 2006년 증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어 참여자로 등록이 되었고, 회장님의 아버님 등이 유족으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이때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등록사업의 업무를 추진한 분이 회장님 부친이신 박 기자 상자 선생님이셨지요? 등록 당시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아버지께서는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이 지대하셨습니다. 198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천도교 임실교구장으로 재직하셨어요. 특별법이 제정되어 참여자 등록사업이 시작되자마자 아버지께서는 관련 사료 등을 준비하여 1차로 등록하였습니다. 우리 임실지역에서는 이후 2차로 많은 분들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을 하였습니다. 제가 2000년 공무원에서 퇴직한 후 2007년에 전북 임실군동학농민혁명유족회 최기주 회장, 이철재 부회장 등 면장 세 명과 함께 임실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록업무를 맡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전국에서 제일 많은 참여자를 등록하였습니다.

문) 네, 동학농민혁명 당시 증조부님께서는 고향인 임실지역을 중심으로 인근의 남원과 순창, 전주 등지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네, 저희 증조부님께서 나고 자란 고향이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학석리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후 관군의 탄압을 피해 임실군 청웅면으로 이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무렵 증조부님의 동생 박용운 님은 전남 여수로 이사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고향인 임실군을 중심으로 남원과 순창, 전주 등지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문) 현재까지 기록 등으로 알려진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증조부님께서는 친 동생 박용운과 같은 마을에 사는 이백우, 이현우 등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894년 3월 20일 지금의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무장기포가 단행한 후 23일 고부관아를 재점령, 이곳에서 유진(留陣)하다가 26일 고부(현재 부안군 백산면) 백산으로 나아가 동학농민군 대오를 확대개편하였습니다. 이 무렵 백산의 주력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봉기가 이루어졌는데,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에서도 봉기하였습니다. 증조부님께서도 지천리봉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듣거나 알고계신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증조부님은 강진면 학석리에서 출생하셨는데, 동학농민혁명 당시 강진면 대표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60년대 운암댐이 생겨나면서 일부만 남아있는 지천리봉기 때 증조부님께서 친동생 박용운, 매제 이기완, 고모부님, 같은 마을에 살던 이백우, 이현우 형제 등과 함께 참여하셨다고 아버지께서 얘기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문) 네, 증조부님께서는 1894년 3월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봉기 때 참여하셨으며, 그해 가을에 벌어진 남원 지리산자락의 방아치전투, 운봉전투, 남원성전투 등에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원 운봉전투 때 증조부님께서 관군에게 체포되어 멍석에 말려 불에 태워서 죽이려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불을 끄고 구출했다고 하는데, 이점에 대해 알고 계신 내용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제가 알고 있기로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895년 1월 15일경 강진면 주재소 왜경에게 증조부님과 증조부님의 친동생 박용운 두 분이 함께 체포되어 강진면 율치마을(옛 윗밤재)에서 멍석말이를 하여 불태워 죽이려고 했다는 얘기를 제 아버지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주민들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온몸에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왜경과 관군의  계속되는 추적을 피해 회문산 깊은 산중에 피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문) 증조부님께서 순창군 회문산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약 6년 숨어 지내다가 다시 고향 임실로 돌아와 천도교 포교활동에 적극 임했다는 사실은 “朴順萬 道號 常庵 信訓法道師 甲午 甲辰 乙未 戊寅 4大運動에 參與하여 救國運動과 宗敎事業에 獻身하다”(『천도교임실교사』, 최동안 편집, 1981. 93쪽)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증조부님께서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생 박용운과 함께 혁명에 참여하셨고, 혁명이 끝난 이후에도 아들인 박노철(朴魯哲)과 함께 갑진년 개화운동, 을미의병, 무인멸왜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이 확인됩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증조부님께서 증조부님의 형제들과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셨고, 제 조부이신 박노철 님께서는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을 제가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제 조부께서도 동학농민혁명과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셨는데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저의 증조부님과 증조부님의 형제분, 그리고 조부님과 아버지께서 천도교 동학포교에 헌신하셨습니다. 부친께서는 동학농민혁명으로 다 쓰러진 천도교 임실교구를 일으켜 세워 25년 동안 임실교구장을 지내기도 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 2022년도에 천도교에서 행정절차를 거쳐 임실교구를 문화재로 등록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재 10억 원의 국비로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임실교구 복원사업을 통해 임실지역의 동학농민혁명사와 천도교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 증조부님께서는 동학농민혁명은 물론이고, 이후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후에도 3.1운동, 무인멸왜운동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시다가 1932년에 돌아가셨지요? 조부님 혹은 아버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으면 편안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증조부님은 지금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증조부님께서는 동학농민혁명 이후에도 기미년(1919) 3월 16일부터 17일까지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평지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셨고, 3월 22일 강진면 갈담리 장터에서도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셨다는 사실을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게  쓰러진 후 국운은 기울어서 1905년 을사년에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10년에는 일본의 총독통치를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 동학농민군과 그 정신이 혁명이 끝난 후에도 항일의병으로 거세게 불타올랐고, 특히 기미년 3.1운동, 1938년 무인년 멸왜운동 등으로 국권수호를 위한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저의 증조부님과 그분의 형제들, 매제분, 그리고 아들 등도 모두 일제침략에 맞서 국권수호를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분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독립유공자 기산범위를 1895년 을미의병으로부터 적용하고 있어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잡혀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념사업단체 관계자, 역사학계 관계자 등이 수년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라고 보훈처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회장을 맡고 있는 전주동학농민혁명유족회에서도 지난해 국가보훈처 전주동부지청 앞에서 40일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문) 네, 회장님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 을미의병 참가자 그러니까 양반 신분을 지녔던 사람들이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싸운 것은 독립운동이고, 평민이나 천민의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싸운 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지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목숨을 걸고 국권을 되찾고자 투쟁했던 모든 분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제4조(적용 대상자)를 보면 “1. 순국선열: 일제의 국권침탈(國權侵奪)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建國勳章)ㆍ건국포장(建國褒章)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 또는 “2. 애국지사: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ㆍ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04년 제정된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國權)을 수호하기 위하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야 할 법률적 근거는 마련된 셈이지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회장님 증조부님은 지금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요?
답) 참, 증조부님을 어디에 모셨냐고 물으셨지요? 제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 얘기를 하다가 다소 격앙되어 그만 깜박 놓쳤습니다.(웃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된 저의 증조부님이신 순자 만자 님은 현재 임실군 강진면 학석리 3번지에 모셔져 있습니다. 묘소에 동학농민혁명 유공자 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증조부님이신 동생 용자 운자 님은 전남 여수에 모셔져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박순만 님의 묘소(전북 임실군)
문) 잘 알고계시는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관문을 활짝 연 민주주의 뿌리이자 근대민족주의 운동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 등을 겪으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극심하게 왜곡되고 축소된 채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져 왔습니다. 다행스럽게 지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동학농민혁명이 재평가되어 대중적인 역사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2004년 특별법 제정, 2019년 기념일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전에는 우리와 같은 참여자 후손들은 ‘반란군 후손’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억울한 세월을 보내야했습니다. 다행히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역사학계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재평가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였고, 전국 각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근현대 민족민주운동의 뿌리로 새롭게 인식한 것을 바탕으로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100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김대중 대통령 때 특별법이 국회의원입법으로 상정되었고, 논의절차를 거쳐 마침내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로써 실로 110년 만에 우리 후손들이 반란군의 후손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9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에 제정되어 달력에도 기재되고, 매년 정부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식을 성대하게 열고 있습니다. 감회가 새롭지요. 그렇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을 마무리하여 명실상부하게 참여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명예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 네, 회장님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혹여 빠뜨린 얘기가 있거나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가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참여자 서훈을 위한 범국민연대를 발족하여 그에 따른 법률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하루빨리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전국의 유족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적극 대응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올해는 꼭 189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습니다.
문) 선생님, 긴 시간 동안 귀한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순조롭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기구독 신청

발행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COPYRIGHT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2025년 겨울 62호
목차
目次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