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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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찾아서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찾아서

(고성산동학혁명군기념사업회,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일 시: 2016년 7월 27일

장 소: 공주대학교 세미나실

대 담: 심국보 |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정갑선 | 고성산동학혁명군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문병학 | 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



 

문병학: 안녕하세요. 『녹두꽃』 가을호 지역대담을 경남 서부지역 두 단체 임원을 모시고 갖게되었습니다. 먼저 두 분 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갑선: 안녕하세요. 저는 하동 옥종면 북방리에 살고 있는 고성산동학혁명군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정갑선이라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기념재단에 감사드립니다. 하동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호남과 영남지역 농민군이 연합하여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입니다. 이를 기념해서 건립된 [동학혁명군위령탑]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심국보: 반갑습니다. 저는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심국보라고 합니다. 산청은 경남 서부지역 최초로 동학농민혁명 기포가 일어났던 곳입니다. 저희들이 지역의 동학농민혁명 기록들을 검토하고 공부하면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위령탑도 세우고, 우리 지역 동학혁명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힘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문병학: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지역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 전개된 반봉건항쟁이자 반일민족항쟁입니다. 경남 서부 지역은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된 임술년 농민항쟁으로부터 부정부패로 얼룩진 조선후기 봉건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농민항쟁의 역사적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오던 곳이지요? 이후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때도 치열하게 농민항쟁이 전개된 고장인데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심국보: 동학농민혁명은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전봉준 장군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880년대는 물론이고 1894년 갑오년 때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경남 산청 내대리에서도 1894년 4월 백낙도 접주가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아직 세력이 강성하지 못한 때였기 때문에 기포 초기에 진압되어 백낙도 접주 등 중심인물이 처형되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9월 2차 봉기 때는 진주 인근의 동학농민군과 호남의 동학농민군이 연합하여 진주성을 함락하기에 이릅니다.


정갑선: 9월 2차 봉기에 하동과 진주의 동학농민군이 광양·순천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하동부를 공격하여 점령해버렸습니다. 경남 서부지역 농민군은 인접해 있는 광양·순천의 농민군과 연계를 가지며 활동했지요. 9월 17일에는 하동에서 수천 명의 동학농민군이 진주로 진격하여 관아를 점령했고, 그 다음날 영호대접주 김인배가 입성함으로써 진주는 그야말로 동학농민군 세상이 되어버렸지요. 이렇듯 경남 서부지역에서도 동학농민군 위세가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러다가 9월 말 관군과 일본군이 밀고 들어오면서 전세가급박해졌고, 10월 14일 하동 고성산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일본군의 우세한 무기에 밀려 패퇴하였습니다.



문병학: 경남 서부지역의 기념사업회가 설립된 경위와 그동안 추진해온 정신선양 사업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정갑선: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기념해서 경남 서부지역에 계신 천도교 교인들과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성금을 모아 하동 고성산 동학혁명군위령탑을 건립하였습니다. 현재는 고성산동학혁명기념사업회와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별개 단체로 구분되어 있지만 사실은 고성산사업회에서 산청사업회가 분가를 해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원래 산청은 고성산기념사업회에서 함께 활동해오다가 2014년 9월 19일 별도 단체로 분가하여 창립했습니다. 2011년엔가? 천도교 진주시 교구에서 인내천 강좌를 진행했었는데 그 때 산청의 동학이야기가 나와서 관심을 가졌어요. 김준형 교수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면서 산청군 지역민 50프로, 경상도 천도교인 50프로 이렇게 모여서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별도로 창립했던 것이지요. 기념사업회는 산청과 고성으로 각각 나눠져 있지만, 갑오년 4월 경남 서부지역인 산청 내대리에서 기포한 때로부터 10월 14일 일본군과 고성산전투까지 전체 과정을 하나로 보고 정신선양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심국보: 경남 서부지역 중에서도 산청, 진주, 하동 일대에서 기포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전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때로부터 꼭 32년 전인 1862년에 일어난 이른바 진주민란(임술농민항쟁)이 진주의 수곡과 동학농민혁명 경상서부지역 발상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산청 내대리 덕산 일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산청이 진주에 속해 있을 때였는데, 진주민란이 발생한 지역과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산청, 하동 지역에서의 동학농민군 기포 지역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농민항쟁의 전통이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곳이지요. 이런 지역적 정신이 동학과 연결이 되면서 산청 내대에서 최초 기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점차적으로 진주 지역에서 하동 지역으로 옮겨져 오면서 호남지역의 동학군들과 연계를 가지고 갑오년 가을에 진주성을 무혈입성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기념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산청, 하동, 진주 등을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단편적으로 다루지 않고 경남 서부의 동학농민혁명을 전체적으로 보는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병학: 산청군 내대리는 갑오년 당시 봉건제도 개혁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경남 서부지역 최초 기포지이지요? 산청사업회에서는 내대리에 경남 서부지역에서 최초로 기포가 이루어진 그 역사 현장에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기념식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심국보: 산청 내대리에서 백낙도 접주를 중심으로 기포가 이루어진 것은 갑오년 4월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남 지역에서 최초로 봉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정부의 부패한 관리들을 물리쳐서 사회를 개혁하고자 들어 올린 기치가 반봉건이었어요. 이렇게 경남 서부지역 최초로 반봉건 기치를 올린 곳이 산청 내대마을인데, 아직 세력이 강성해지기 전이라서 관군에게 진압되어 백낙도 접주 등 중심인물이 처형되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산청 내대마을에서 이루어진 갑오년 4월 기포는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혁명사에서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계승하고 기념하기 위해 2015년 10월에 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 하동 고성산에는 20년 전에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져 해마다 갑오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있고,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에도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들이 많이 있는데요. 산청의 경우 동학농민혁명 기포 사실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비록 그 규모가 원대하지는 않지만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천도교중앙총부, 산청군 등과 협의하고 지역주민이 합심해서 건립하였지요. 산청 내대리 동학농민혁명 기포 기념비를 통해 산청이 경남 최초의 동학농민혁명 기포지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내대리 기포 당시 희생된 백낙도 접주를 비롯한 선열의 뜻을 기리는데 바탕이 되었으면 합니다.



심국보 | 사무국장


문병학: 제가 재작년에 전라도 순천과 광양, 그리고 고성산 동학혁명군위령탑 등지를 답사하면서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진주농민항쟁기념탑도 답사했었는데, 1862년 진주농민항쟁(임술년 농민항쟁) 기념탑은 산청이나 고성 쪽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세운 것인가요?


정갑선: 그것은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념비가 아니고 진주농민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위무하기 위해 건립한 위령탑이예요. 우리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쪽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2012년도엔가? 진주농민회가 중심이 되어서 진주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위령탑은 서 있는 위치가 산청군 덕산면 내대리와 하동군 고성산에 서 있는 위령탑과 딱 중간지점이에요. 이 지역이 진주시 수곡면인데, 옛날에는 큰 시장이 자리했던 곳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고, 그래서 농민봉기가 많이 일어났다고 그래요. 임술년 진주농민항쟁도 이곳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해서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갑선 | 사무국장


문병학: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반외세 항쟁이다 이렇게 말들을 하지요. 그런데 전국에 걸쳐 지금까지 건립· 설치된 기념시설물 대부분이 반봉건 농민항쟁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반외세 민족항쟁, 다시 말하면 반일항쟁의 의미를 부각시킨 기념시설물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고성산을 ‘대일군전적지’(對日軍戰迹地)로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면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정갑선: 네. 지금 고성산에 세워져 있는 위령탑에 왜군과 전투를 했다는 기록이 비문에도 새겨져 있고, 경상남도에서 세운 안내판 등에도 그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고성산은 현재 경상남도 도지정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선생님 말대로 앞으로 경상남도나 진주시, 고성군, 산청군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여 반외세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는 1995년 동학혁명군위령탑을 건립한 후 매년 11월 11일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가 되어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하동군에서도 행사를 규모 있게 치룰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갑오년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고성산전투 때 전사한 농민군이 186명이라고 일본군 측의 문서에 기록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어찌 그뿐이었겠어요? 일본이 불법으로 조선에 들어와 농민들을 학살한 것이라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서 축소해서 적어놓은 것이겠지요. 실제로 그때 참여하셨던 분들의 후손이나 연로하신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500여명 이상이 전사했다고 말하거든요. 이런 부분도 앞으로 우리가 더 연구를 해서 희생하신 분들을 정확하게 규명하여 그분들을 기리고 추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병학: 경남 서부지역은 인근 전라도 순천에 영호도회소를 설치하고 세력을 떨치던 김인배 대접주 농민군과 강력한 연계를 통해 한 때 이 지역의 권력을 사실상 장악했다고 연구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정갑선: 순천, 광양지역의 동학농민군들과 아주 적극적으로 연대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적극적인 연대라기보다는 아예 하나가 되어 싸웠다고 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군들이 진주 쪽에 와서 동학군 소탕작전을 펼 때 경남지역 농민군들은 산청군 수곡에서 후퇴하여 고성산 쪽으로 나가 진지를 구축하고 대항했는데, 일본군 신식무기에 밀리니까 순천, 광양 쪽에 지원을 요청해서 함께 싸웠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병학: 동학농민혁명이 올해 122주년인데, 경남은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에 비해 아직 대중적인 역사인식 확산이 덜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북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인식이 대중적으로 그 인지도가 높고, 관심 또한 많은 것은 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해서이겠지만 그 보다는 각 지역의 기념사업단체 활동이 대중적인 역사인식 확산을 견인한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전북 정읍에서는 1967년부터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전북지역에는 6개 기념사업단체가 활동하고 있거든요.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산청과 고성산기념사업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동학농민혁명 역사적 의미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전환을 위해 향후 어떤 측면으로 기념사업의 방향을 잡고 계시는지요?


심국보: 현재 저희가 하고 있는 기념사업은 주로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좀 더 나아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서 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산청사업회나 고성산사업회는 현재까지는 대중적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기보다는 몇몇 뜻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소규모적인 사업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많이 버겁습니다. 그렇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면서 차차 기념사업회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기념재단에서 활성화된 전북지역이나 충청도지역 그런곳보다 우리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지역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주셨으면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지역에 국한된 자그마한 역사가 아니잖아요? 문선생님 안 그렇습니까? 지역에서 20년 넘게 기념사업을 하셨으니 누구보다도 문선생님이 잘 알 거 아닙니까. 경상도 지역에도 적극적으로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정갑선: 저희들도 우리 지역의 대중적 인식이 낮아 참 안타까운데, 다른 지역 특히 전북 고창이나 정읍 같은 경우 행정기관에 동학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상당히 부러웠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전개되었지만 2차 봉기 때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북한 쪽 평안도 이런 곳에서도 엄청나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전북지역을 제외하고 타 지역은 아직 요원하다 싶어서 기운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전북지역 주민들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이 높은 것에는 정읍이나 고창 등지에서 기념사업을 꾸준히 해오셨고 열심히 활동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앞으로 기념사업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사업회에서 해보고 싶은 사업은 위령식 한번 모시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닌,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고 기억에 남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경남 서부 지역의 사업회들이 연대를 해서 예를 들면 진주가 중심이 되어 문화재를 열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이라 던지,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퍼포먼스 같은 것들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소규모로는 고성산동학혁명군 탑이 있는 옥종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옥종면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동학농민혁명 글짓기 등을 개최하여 우선은 지역민들에게 어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도 여기에 참여했구나 하는 인식을 주는 것부터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갑오선열들의 반봉건 반외세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선양한다는 것은 지금의 민주주의와 같은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문병학: 두 선생님들께서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주춧돌을 놓고 계시는데, 사명감이랄까? 역사적 책임감이랄까 이런 것으로 어깨가 자못 무거울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남들이 쳐다보지 않을 때, 반란사건으로 치부되던 때부터 기념사업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두 분 선생님의 노고에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듭니다. 20여 년 전과는 달리 그래도 지금은 <특별법>도 제정되어 그 법에 의해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으로 기념재단도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고, 전국 각 지역에 30여 개가 넘는 기념사업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니까 외롭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좌담을 마칠까 합니다. 끝으로 못다 한 얘기라든가, 기념재단 혹은 전국의 기념사업단체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갑선: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을 민간차원에서 한다는 게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자료를 찾는다거나, 사료를 발굴한다거나 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는 어려운 점이 많지요. 그런 부분을 기념재단에서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부 쉬쉬하던 시절이니까 쉽게 나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유족 발굴하는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고요.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 조상들의 삶이었기 때문에 선양사업이 널리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살자 했으면 그 당시에 누가 목숨 걸고 싸웠겠어요? 위대한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 바로 한국의 정신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정신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심국보: 기념재단에서 소식지를 통해 지역의 기념사업 단체와 만나 이렇게 좌담하는 프로그램을 배치한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전화나 문서로 주고받는 정보와는 다르게 실제로 기념사업에 몸담고 있는 분들을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하는 기념재단에게 빈말이 아니라 진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지역대담 모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문병학: 바쁘신 중에서도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신 두 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두 분 선생님을 뵙고 대화를 나누면서 머지않아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도 활짝 꽃펴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제 마음이 정말 따뜻해졌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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