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찾아서
일 시: 2017년 5월 17일 (수), 14:00~16:00
장 소: 고창군 군립도서관 회의실
대 담: 진윤식 |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문병학 | 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

진윤식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문) 안녕하세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 가을호 지역대담을 전북 고창지역에서 활동하는 진윤식 부이사장님을 모시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들을 위해 본인의 소개와 함께 동학농민혁명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답)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창의 진윤식입니다. 제가 고창동학농민혁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4년 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고창농민회를 찾아오신 당시 고창문화원장을 맡고 계시던 이기화 선생을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고창군농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문) 동학농민혁명에서 고창지역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에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기념사업이 추진이 좀 늦게 시작되었지요?
답) 네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동학농민혁명 하면 정읍이 떠오르는 것이 현실이고 고창에 대한 인식은 별로 없었습니다. 1970년대 이전의 역사학계 연구가 대체로 오지영의 동학사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고부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창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규명이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창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학계 연구가 1980년대로 넘어와 이루어지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역사적 사실 규명과 의미 부여가 좀 늦었지요.
문) 고창지역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특별히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이 있는지요?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에서 각 지역마다 역사적 특수성이 있는데, 자기 지역의 역사적 의미에 부합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답) 199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이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갑오선열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고창지역에 산재한 유적지 발굴 및 보존, 관련 자료의 수집과 연구조사, 정신계승을 위한 무장기포 역사재현 등 대중적인 기념행사 등을 다채롭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1월에는 동학농민혁명 최고지도자 전봉준 장군 탄신제를 모십니다. 그리고 4월에는 무장기포 재현, 진격로 걷기, 무장읍성 점령 재현 등 다양한 내용으로 ‘무장기포기념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학로는 제가 2007년부터 사료나 구전 등을 바탕으로 3년간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구수내를 기점으로 무장읍성, 사신원, 인천강 인냇보, 굴치, 사 후·포를 거처 줄포, 눌재와 옛 고부관아 그리고 백산성으로 이어지는데 무장에서 기포한 후 북상한 경로를 동학로라고 붙인 것입니다. 매년 우리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4월 동학로를 걷기와 함게 동학농민군이 무장읍성을 무혈입성을 재현하는 역사현장 상황극을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연계시켜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매년 학술대회 개최를 통해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역사적 의미를 연구조사하고 있으며, 지난 2008년부터 정신계승을 위한 학술, 연구, 문화 사업에 기여한 단체나 개인에게 「녹두대상」을 시상하는 사업도 추진하는데 벌써 10회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 고창지역에서 기념사업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되면서 그만큼 관련 유적지 정비사업 등도 미흡한 것 같습니다. 최고지도자 전봉준 장군 생가라든가 제1차 동학농민혁명 기포지인 공음면 구암리 역사현장도 정비가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고창지역 유적지 정비가 필요한 내용 등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답) 네 그렇습니다. 공음면 구암리 구수내, 이곳은 아홉 골에서 물이 흘러와 모이는 곳이라서 구수마을 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왜정 때인 1925년에 법성포 앞 바닷가에 제방을 막고 구수마을 모래사장 위쪽 두암마을 앞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이쪽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구수마을 아래쪽 석교마을은 옛날 세곡을 쌓았던 세곡창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일반 농가만 남아 있으며, 구수내 모래사장도 논밭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가 현재 전라북도 사적지로는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와 위상에 걸맞게 국가사적으로 지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국가사적으로는 지정받기 위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무장기포지 정비상태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유적지 확대 및 재정비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입니다. 기념재단에서 이점을 유념해서 정비사업을 기획하고 예산도 배정을 좀 해주길 바랍니다. 전봉준 장군 생가 터도 매 일반입니다. 생가를 제대로 재정비하고 이곳에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항일의병, 3.1운동,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등 우리나라 민족민주운동의 맥락을 볼 수 있는 전시관 등의 조성이 꼭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여느 농촌지역이 다 그렇지만 고창군도 농촌이라서 도시로 사람들이 나가는 바람에 군민들이 대체로 연로하신 분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을 해나가는데 어려움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갑오선열들의 정신을 후대에 전승시키기 위해서는 청소년 교육사업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고창기념사업회에서는 청소년 교육 등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하는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있는지요?
답) 네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계승하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5~6년 전부터 고창군 관내 초 중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인을 대상으로 ‘녹두교실’을 운영하여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답사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 고창지역에 많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들이 있는데, 유적지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네, 유적지가 참 많지요. 먼저 공음면 구암리 당산마을이 있지요. 이곳은 1894년 3월 20일 손 화중포를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이 전봉준을 도솔대장으로 추대하고 포고문 등을 낭독한 뒤 보국안민창의의 큰 깃발을 앞세우고 출정한 곳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이 사건을 제1차 동학농민혁명 출발점으로 잡고 있지요. 또 고창읍 죽림리 당촌마을에 전봉준 장군 출생지가 있지요. 전봉준 장군은 이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13살 무렵에 고부로 이사를 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요. 촌로들이 증언에 따르면 전봉준 어렸을 때 정월대보름 같은 날에 이웃마을끼리 석전놀이와 쥐불놀이를 할 때 어린 나이임에도 전봉준이 대장노릇을 했다는 합니다. 전봉준 장군이 13살 무렵에 지었다는 백구시(白鷗詩)도 전해지고 있지요. 이밖에도 성송면 괴치마을에는 손화중 도소 터가 있으며, 같은 사천과 양실마을에는 포교를 했던 장소와 작은 집터가 있습니다. 이곳 인근의 청송마을은 옛날의 역참구실을 했던 역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동학농민군들이 황토현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에 흥덕 고창을 차례로 점령하고 무장읍성에 들이닥쳐 3일을 유진했던 무장읍성과 여시뫼봉(狐山峰)이라는 유적지가 있으며, 동학농민혁명과 관련이 깊은 연관 유적지들로 무장읍성과 고창읍성 등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매우 크지요. 그리고 고창지역 유적지에서 빠트릴 수 없는 유적지가 바로 선운사 도솔암의 마애석불입니다. 무장기포가 일어나기 2년 전인 1992년 8월 이후 성송 괴치마을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손화중 포에서 선운사 마애석불 미륵비기를 탈취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농민군들이 고부성을 향해 갈 때 하룻밤을 묵어갔던 사·후포 마을, 손화중 장군이 숨어들었다가 부하의 밀고로 붙잡힌 수강산 산당 등의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문) 부이사장님께서는 1990년대 초반기부터 기념사업에 몸담아 오셨는데, 농사지으랴 농민회 일 하시랴, 전국 각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참가하랴 아주 정신이 없지요? 백주년 전후해서 기념사업에 몸담았던 분들이 죄다 그랬던 것처럼 부이사장님께서도 지금 어디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비를 들여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도대체 동학농민혁명 어디에 매료되어 그렇게 열정적으로 임하고 계시는지요?
답) 글쎄요 그 어떤 역사적 사명감 같은 것, 농민혁명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애석한 마음, 과거에 핍박받던 농사꾼이 지금도 홀대받고 있는 현실 이런 것들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동학농민군 진격로 발굴과 같은 일은 역사현장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내가 하지 않으면 영원히 묻혀버릴 수 있겠다 싶은 위기감도 기념사업을 계속하게 만든 요인들이겠지요. 거기다가 내 고장에 대한 애향심도 있고, 어렸을 때 한문을 조금 배워서 옛날 사료를 조금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서 얻는 재미 이런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운명적인 만남 같습니다.(웃음)
문) 제가 지난해 8월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협의하여 서울 종로구 전봉준 장군 순국 터인 서울지하철 종각역 5번 6번 출구 영풍빌딩 앞에 전봉준 장군 동상을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가 드디어 지난 4월 10일 서울시 비영리법인으로 인가를 받아서 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이 위원회 이사직도 맡아서 서울을 오르내리느라 힘드시죠?
답) 힘들지 않습니다. 도리어 무거운 책임감과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요한 역사적인 일에 동참하는 것이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부장님이 이 사업의 첫 단추를 끼우고 그 후로도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실질적인 일들을 적극 지원하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전봉준 장군은 우리 고창 출신이지만 대한민국 근대 민주주의 첫새벽을 활짝 연 분이니 우리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자 지도자이시지요. 그분의 동상을 우리나라 수도 서울, 그분 순국 터에 세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 상징성도 아주 크다고 봅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적으로 내몰렸던 분이기에 더욱이나 서울 종로에 그분 동상을 세워 자존만대에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열심히 모임에 오라면 올라가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 기념사업을 추진해오면서 느끼셨던 점이나 여타의 소회 등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답) 아무래도 기념일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별법이 제정되었던 2004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었으니 벌써 13년이나 흘렀네요.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새로운 정부도 들어서고 했으니까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문) 농사철이라 바쁘실 텐데도 대담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