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발행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COPYRIGHT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목차열기
2017년 겨울 30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심풍택의 증손자 심재식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심풍택의 증손자 심재식



 

문) 이번 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 인터뷰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심풍택의 증손자로 정읍지역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심재식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 반갑습니다. 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심 풍자 택자, 심풍택의 증손자 심재식입니다. 갑오선열들의 숭고한 정신 계승·발전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정읍시지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애국애족 정신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정읍지역 유족회원들을 더 많이 발굴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리는데 보탬이 되고자 나름대로 힘쓰고 있습니다.



문) 증조부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는지요?


답) 제가 어렸을 적에 증조부님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를 하셨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가끔 선산에 오르시며 조상님들 묘소를 정비하실 때 말씀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전에 증조부님이 동학에 참여하셨다가 광주 감옥에서 돌아가셨다고 해요. 아버님께서도 자세한 말씀은 많이 안 해주셔서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좀 더 자세히 증조부님에 대해 여쭤보고 기록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아쉬움이 남아 지금은 많이 후회됩니다. 그때는 조상님들 중에 동학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적으로 매도당하던 시기여서 숨기기에 급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동학에는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경선 장군의 후손인 전(前)정읍지역 유족회 회장 최명언 회장님을 만나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그 역사적인 순간들, 생생한 현장에 대해 여러모로 듣게 되었어요.



문) 증조부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배경에 대해 들으신 내용은 없는지요?


답) 증조부님께서는 손화중 장군과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며 교분이 깊었다고 들었습니다. 손화중 장군은 학식과 지략이 뛰어나 전봉준 장군이 혁명에 참여하기 전 많은 일들에 대해 논의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인품이 고결하고 포용력까지 갖췄던 분이라 하니 조부님께서 그 영향을 받아 동학을 접하게 되고 ‘의(義)’를 함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조부님께서는 동학의 사상적 기반을 바탕으로 전봉준 장군의 혁명론에 공감하여 ‘의(義)’를 행동으로 옮긴 혁명에 참여하시어 1894년 3월 백산봉기를 시작으로 황토현전투, 장성황룡강전투, 전주성전투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전투에 용맹하게 참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문) 집안의 어른들이나, 주변 분들께서 증조부님에 대해 하시는 얘기를 들으신 적은 없으신지요? 그리고 증조부님에 관한 일화가 있거나 혹여 남기신 유품은 없는지요?


답) 남기신 유품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증조부에 대한 얘기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부분적으로 들었던지라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뚜렷하게 기억 남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키가 작고 왜소했으며, 굉장히 민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질이 정의롭고 강직하여 옳지 않은 일은 참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가난하고 힘들어서 글도 생각도 짧았다고는 하지만 선조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가장 어두운 곳에서 횃불을 밝히는 위험한 일이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억척스럽게, 정말 어쩌면 무지하게... 해내셨던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그런 일들인데 말이죠.



문) 동학농민혁명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굴절로 인하여 지난 100년 동안 반란사건으로 왜곡되어왔습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분들의 후손들이 알게 모르게 핍박을 많이 받아온 것을 확인되고 있는데 선생님 집안에는 피해나 고초를 겪었던 일은 없었는지요?


답) 증조부님께서 26세에 광주 감옥에서 사형을 당해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증조할머니께서는 증조할아버지가 사형을 당하시자 자살하셨다고 해요. 고조할머니께서도 증조부님 옥바라지를 하다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아 지셨다고 합니다. 옥바라지에 남아있는 어린 손주들까지 돌봐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어려운 형편에 집안을 잘 지켜서 가문을 보존해주신 고모할머니가 우리 집안을 살려 오늘이 있게한 훌륭한 분이시지요.



문)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조부님을 비롯한 동학농민군은 국권수호를 위해 서울로 진격하던 중 충청도 공주 우금티에서 일본의 신무기를 극복하지 못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우금티전투 이후 간신히 살아남은 심풍택 선생님은 부안의 김여중, 광주의 김형순과 함께 피신했다가 재기하려 했으나, 전남 장성에서 체포되어 광주 감옥에서 옥사(獄死)하셨습니다. 증조부님의 최후에 대해 알고계신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 앞서 말했듯이 증조부님은 손화중 장군을 따르며 여러 지역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일본군이 신식무기로 무장하여 우금치에서 농민군들이 대패를 하자 증조부님은 장성으로 피신을 하셨습니다. 옛날 조상 중에 둔재라는 분이 장성에서 살았었다고 해요. 그래서 증조부님은 연고가 있는 장성으로 피신을 하셨나 봐요. 그러다가 동지인 부안의 김여중과 광주의 김형순 등과 함께 재봉기를 하려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왜경들에게 체포되어 광주로 끌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감옥에서 심한 고문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고 해요. 후손으로써 죄송스럽기 한이 없지요.



문)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로 전국 각 지역에서 기념사업단체가 결성되며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혁명 100주년이던 1994년 3월 동학농민혁명유족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유족회와 전국의 기념사업단체, 전공연구자 등이 힘을 합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에 힘입어 2004년[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로써 반란사건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졌던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이 제대로 평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별법 제정에 대해 참여자 후손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답) 이제야 제대로 국민으로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예전까지만 해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45년간 강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역사책에는 동학농민군을 반란군이라고 기록하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인식 또한 동학농민군을 반란군으로 인식하였고, 제대로 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 선조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를 했었다.”라고 말하면 반란군의 후손이라는 소리를 들어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다닙니다. 특별법이 제정될 때 “내 마음이 해방 된 날”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마크를 가슴에 차고 다닙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그동안 많은 애를 써주신 전국의 기념사업단체 임원과 회원, 전공연구자 등등 많은 분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애국애족 정신의 전국화와 범국민적 확산을 위해 다양한 정신선양사업을 추진하는데 힘쓰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분들에게도 너무나 큰 감사말씀 드립니다.



문) 기념재단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하고자 사명감을 갖고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념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답) 가장 바라는 것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하루 빨리 제정되도록 힘써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족들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기념일이 제정되어 국가적인 행사가 이루어지고, 갑오선열들의 후손들이 현충원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소원이기도 합니다. 수십 년을 우리 유족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습니까? 신분도 숨기며 살아왔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동학농민혁명군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갑오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에 동참해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기념일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지역 간의 의견을 통합하는데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문) 선생님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정기구독 신청

발행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COPYRIGHT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2025년 겨울 62호
목차
目次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