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를 위해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이상식

문) 이상식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 안녕하십니까?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이상식입니다. 저는 전라남도 장성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의 발발로 인해 학교가 불타버려 2년간 서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서당에서 중국역사책인 『통감』과 『사략』을 배우며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를 통해 대학에 진학할 때도 서울대학교 사범대 역사과를 선택하였습니다.
대학교에 재학 중 3학년 때는 4⋅19혁명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직접 겪으며 나도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동시에 농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후 군대를 전역하고 중⋅고등학교 선생으로 약 12년간 재직하였고, 1977년부터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교육했습니다. 격동의 1980년, 5⋅18당시에는 전남대학교 교수 대표로 시국선언문을 작성했고, 이와 관련되어 옥고도 치르고 4년간 해직되기도 했습니다. 복직한 이후에는 계속 교수직을 수행하였고, 2003년에 정년퇴임하여 지금까지 명예교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저는 요동치는 한국근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어떻게 설립되었습니까?
답) 고등학교 동창인 역사학자 이이화씨와 이전부터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자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학농민혁명이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한승헌 변호사가 전주에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여러 지역에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고, 광주⋅전남에서는 제가 100주년기념사업회를 시작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후에는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로서 계속적인 선양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 동학농민혁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을까요?
답) 제 박사학위 취득 논문의 제목이 「19세기 말 한국의 민중운동연구」입니다. 논문의 골자는 19세기 말에 조선의 민중들은 이미 스스로 나라를 근대화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지요. 이 논문을 통해 동학농민혁명과 인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근현대사를 교육하다보니 풀어내야할 가장 큰 과제가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한국근현대사의 시작이며 이를 이끌어간 원동력이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근현대사에 대해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연구자들은 거의 다 좌경용공으로 몰려 처벌받곤 했죠. 죽음을 무릅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중대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문) 오랜 시간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해 활동하셨는데, 어떤 일들을 해 오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답)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먼저, 장성황룡전적지에 승전기념공원을 만든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원이 세워질 당시부터 지금까지 매년 5월 27일에 전국 천도교인과 관계자들이 모여 승전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동학농민혁명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이화씨, 한승언 변호사, 그리고 저와 많은 학자들, 언론이 힘을 합쳐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하였고 그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 장성동학농민혁명승전기념공원을 설립하신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이가 어떻게 설립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답) 제가 교수로 재직할 때 학생들과 함께 유적지를 답사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중에서 장성황룡전적지를 답사 할 때면 항상 가슴이 아프고 죄의식을 느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중 가장 큰 승전지역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념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관군대장 이학승의 비만 덩그러니 서있었지요. 그곳을 답사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언젠가 이곳에 동학농민혁명의 승전기념비를 세우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에 제가 앞장서서 이곳에 기념공원을 세워 그 꿈을 아주 거창하게 이루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닌 많은 분들이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나치기 쉬운 역사를 기념할 수 있게 되어 매우 큰 보람이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기념공원을 조성할 당시 설계공모를 하였는데, 전남대학교 사범대학교 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나상옥 조각가가 지향하던 가치에 맞게 응모하여 이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승전기념탑을 보며 보통 죽창의 형상으로 높이 솟아오른 모습에 대해서만 언급하곤 하는데, 장태를 굴리는 농민군의 모습과 기념탑 전면의 부조 또한 아주 우수한 작품입니다. 나상옥 조각가는 이후 국립5⋅18민주묘지의 5⋅18추념탑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문) 광주⋅전남권의 거의 모든 곳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지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사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 동학농민혁명 당시 광주⋅전남은 전북과 같은 전라도 지역이었습니다. 이 전라도 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으며, 이끌었고 최후까지 처절하게 항쟁했던 장렬한 현장입니다. 광주⋅전남지역에 한하더라도 전주성에 무혈입성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장성황룡전투의 현장이 있습니다. 전라도 지방군을 격퇴한 황토현 전투와 달리 장성황룡전투는 대포를 가진 정규 중앙군(경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입니다. 그 기세를 몰아 전주성을 무혈입성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우리 힘으로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뼈아프고 슬픈 이야기지만 우금티에서 일본군의 기관총에 의해 거의 섬멸되다시피 하고 후퇴한 동학농민군들은 장성 갈재에서 해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농민군 잔여세력 수만 명이 장흥 석대들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를 건너 섬으로 향했지요. 바로 이들이 한말 의병이 되어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이들입니다. 전국 항일의병의 60.1%가 호남의 의병이었던 것과, 섬 지역에서 항일운동이 특히 많이 일어난 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잔여세력이나 그 후손들이 가담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 올해 동학농민혁명이 12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는 어떤 사업을 추진하셨거나 추진 중이십니까?
답) 오는 10월 17일에 장성군청에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주의 대촌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올해 11월 중에 준공할 예정입니다.
문) 광주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설립중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어떤 기념물이 들어설 예정인가요?
답) 호남지역은 전체가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이며 관련성이 있는 곳입니다. 광주에서는 대촌 출신인 고광문 삼형제가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참여와 더불어, 증손인 고영두씨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명예회복에 이바지한 분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촌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기념공원에는 기념탑, 기념비 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기념비에는 이이화씨와 김대곤 기념재단 이사장님과 제가 여러 기록물들의 문안을 정리하여 글귀를 새길 예정입니다.
문)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이것만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답) 동학농민혁명은 근현대사의 서막이자 민주운동의 원동력으로 한국역사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저는 올바른 이해를 통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하루빨리 확립되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동학농민혁명이 아닌 동학난이다,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가 근대화되었다라고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예를 폄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평가되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문) 기념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으십니까?
답) 우선 전 국민이 함께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제정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국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날들이 올 수 있도록 많은 활동을 해주었으면 하는 기대와 함께 부탁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