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최시형은 신미년(1871년) 3월10일 경상도 영해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동학도인들을 모아 억울하게 참형 당한 스승 수운 최제우의 신원(명예회복)과 포덕의 자유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영해 봉기는 신미영해교조신원운동이라고도 한다. 이를 계획하고 주도한 이는 충청도 홍주(현재 홍성) 출신의 이필제란 인물이었다. 그는 진천, 남해, 진주 등지서 끊임없이 봉기를 도모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그가 다시 찾은 고을은 한반도 동쪽 끝 경상도 영해였다. 해월은 이 무렵 스승 수운 참형이후 태백산맥 깊은 영양 일월산 자락에 은신해 있었다. 이필제는 사람을 보내 해월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교조 수운의 신원을 끈질기게 설득한다. 그러나 해월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주저한다. 그러나 제자들마저 간청을 거듭하자 마지못해 허락한다. 영해봉기에는 주로 초기 포덕한 경상도 일대 도인들이 참가했으며 500여 인에 이르렀다.
출처 : 경북도민일보(http://www.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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